유난히 맑은 시골마을의 장날 아침이다. 사각기둥에 지붕만 얹은 기다란 구조물 대여섯 개가 나란히 서있다. 벽이 없어 바람만 휑하게 스쳐가는 장꾼이 오지 않은 장터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부터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좌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럴듯한 옷 가게의 모양새가 갖추어져간다. 밤과 대추만 바닥에 수북하게 부어놓고 굵은 밧줄을 동그랗게 에둘러서 밖으로 굴러나가지 못하게 해두었다.
  진열대에는 수줍은 소녀의 불그레한 볼 같은 사과가 놓이고, 곱게 화장한 복숭아가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야구클럽을 닮은 바나나 옆에서 야구공인양 자몽이 이국의 향수를 나눈다. 제 철이 되어야 구경할 수 있었던 과일들이 절후를 거스르고 한자리에 다 모였다. 외국에서 온 과일까지 합세하여 계절을 비웃으며 절기를 성토하고 있다.
 
  고요하던 장터는 순식간에 모여든 사람들로 술렁인다. 각설이 엿장수의 노랫가락이 시골 장날 흥을 돋운다.
  여러 종류의 생선들이 넓적한 얼음판 위에 나란히 누웠다. 살아있는 생선들은 물을 채운 널따란 다라이에 담겨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공기방울 앞에 옆줄로 가지런히 모였다. 똑같은 몸짓으로 한자리에서 헤엄치는 품이 뮤지컬 공연장 무희들의 연무 같지 않은가.
  모두들 길 갓 쪽으로 좌판을 차렸는데, 유별나게 한가운데 놓고 장꾼이 양쪽 갓길로 다니게 하였다. 생선 그릇 옆에 도마를 놓고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회로 장만한다. 양념과 주석이 완비된 옆 가게에 가져가서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협력한 시음장을 마련해두었다. 두 사람만 비켜갈 수 있을 만큼 길을 틔워 놓아서 혼잡스러워도 오히려 오일장의 멋이 물씬 풍기는 명물 거리가 되었다.

  시장 주변의 도로 양 섶에는 농민들이 손수 재배한 채소를 싣고 와서 펼친다.
  이른 봄이라서 야산에는 아직 움트지 않았을 산나물을 속성 재배하여 계절을 앞당겨서 선을 보인다. 잎이 넓적하게 자란 싱싱한 취나물을 밑바닥이 볼록 나온 납작한 소쿠리에 수북하게 담아 줄을 맞춰 정돈해 놓았다. 부드러운 나물이 많이 담긴 그릇을 고르는 깍쟁이 아줌마 손님들이 더 싸게 사려고 조르면 조금 더 얹어 주기도 한다. 연세가 많은 분이 팔면 다소곳이 주는 대로 받아가던 손님들이지만, 덤으로 주는 량이 흡족하지 않아 더 담아가려고 부득부득 떼를 쓴다. 손끝으로 겨우 몇 오라기 집어 주고는 선심이라도 베푼 것처럼 으쓱거리면서 쏠쏠한 장사 재미를 보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이라고는 한 올도 없는 할머니가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 전을 벌일 자리를 찾는다. 같은 버스에서 내렸건만 거동이 불편하여 천천히 걸어오느라 다른 이 보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 치아가 없어서 볼이 합죽해져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먼저 온 사람들이 시장 가까운 곳을 다 차지하여 빈자리가 없다. 비좁은 노점들 사이에 전을 펼치고 싶어 하지만 먼저 자리 잡은 노점상이 사용할 만큼 확보한 자리를 반으로 쪼개어 비좁게 쓰면서 양보해 주기는 쉽지 않다. 서로가 불편하여 장사에 지장만 줄 뿐이다. 협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변두리에 전을 펼쳐야만 한다.
  닷새 전 장날 이후부터 양지바른 따뜻한 언덕바지에서 캐어 모은 쑥이라서 시들시들 숨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탐스러운 것들을 접시 같이 조그만 대그릇 하나에 담아 좌판에 올려놓았다. 장터에서 너무 먼 곳이라 찾아주는 이가 드물다.

  산야에서 나는 쑥이라고 모두 다 실하게 살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여름동안에 충실하게 자란 포기 밑동에서 뻗은 뿌리라야 살찐 싹이 돋아난다. 할머니는 좋은 쑥이 어디에 많이 나는지 잘 알고 있어서 실한 것만 골라 캐어서 모은 것이다.
  볕바른 양지에서 자란 자연산이라는 것이 한눈에 느껴진다. 조금씩만 더 담아서 여러 무더기로 올려놓으면 손님들의 눈길을 멎게 할 수도 있으련만.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할머니의 고집스러움이 안타깝다.
  어언 듯 오후 쉴 참 때가 되었는데 보자기 속에는 아직도 가득히 담겨있다. 남은 것이 마를까 봐 분무기로 물안개를 자꾸 뿌린다. 젖은 수건으로 덮어주지만 연방 잎이 마르고 시들어 간다.

  보자기에 가득 남아있는 것들이 오늘 장에 다 팔렸으면 좋겠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몇 무더기를 사 주고 싶어도 가져가기가 불편할 것 같다. 우선 세 무더기만 사서 비닐봉지를 헐렁하게 묶어 납작하게 저며서 서류봉투에 넣어보아도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봉투를 비워 서류 속에 끼워서 넣으니 어렵사리 들어가기는 했다. 두어 무더기 더 사 주었으면 좋으련만 봉투가 찢어질 것 같은데 더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진열한 쑥이 몇 오라기 적게 담겼을지라도 연로한 분이 생업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오늘 식단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할머니 것을 사 드리면 얼마나 고마우랴. 덤으로 더 얹어주라고 떼를 쓰기에는 민망스러울 노인일지라도 사 놓고 보면 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고향에 계신 친정할머니보다 연로하실 법한 노인께서 햇살이 남아있을 즈음에 다 팔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드렸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눈여겨 봐 주지 않는 우리네의 메말라가는 인정이 야속하기만 하다.
  저리 연로하도록 시장에 나와서 고생하는 할머니는 당신을 보살펴 드릴만 한 자손들을 두지 않았을까.

  그래도, 할머니에게 간절하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원체 근실한 성품이라서 가만히 놀고 있지 못하여 근력이 남아있는 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분이고 싶다.
  자손들의 만류에도 한사코 산야로 나가서 용돈이 될 만 한 일거리를 찾아 힘이 닿는데 까지 일을 하는 분이었으면 좋겠다. 벌어들인 용돈은 당신을 위해서는 한 푼이라도 아끼면서 손자손녀에게는 아낌없이 쓰고, 더 사랑스런 증손에게는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할머니이기를 바란다.
  내가 젊었던 시절에 작고하신 우리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