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도망쳐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곳이라고는 오로지 연극이라 불리우는 비밀스런 고성(固城) 뿐이었다. ”
 이 말은 80년대 ‘한국연극사의 신화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은 고성이 낳은 천재 연극배우 추송웅의 우리들의 광대 대사의 한 부분이다.
 추송웅은 1941년 9월 3일 고성군 고성읍 서외리 167번지에서 출생하여 고성의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신 부친 추신수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추송웅은 수재라 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형과 누나들과는 달리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를 닮은 그는 형제들과 달리 키도 작고 얼굴도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었다. 사팔뜨기의 눈, 유난히 튀어나온 입, 모든게 연극의 적이 되어버렸다.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적에 진주로 옮겨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장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마산 중리, 내서, 상남 그리고 부산 사상을 거쳐 부산 청룡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했다. 부산 동아중학교를 다니던 중 사시를 고쳐주지 않는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 무단가출을 시도, 서울로 올라가 극단 ‘신협’의 ‘다이얼M을 돌려라’를 보고 연극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감동을 받는다.
 부산 공전에 입학하고 등교시에는 사시라는 열등감에 긴 채양 모자를 쓰고 다녔다. 집에서는 피아노 건반이 부서져라 후려치면서 지낸다. 영화 ‘워터 프론트’에 나오는 말론 브란도를 모방하면서 눈 돌리는 대목에서 방안의 거울을 수도 없이 깬다.
 59년에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첫해로 입학했다. 서울의 흑석동의 한옥 단칸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중앙대 연주영화학과의 기념비적 인물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지닌다.
 그가 대학가의 첫무대에 출연한 것은 1학년 때의 베니스의 상인 공연에서였다. 이에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다 못해 임기응변으로 써먹던 것이 오히려 경상도 말뒤에 숨어 있는 뉘앙스를 표준말 어미에다 교묘하게 이식해 놓은 추송웅 특유의 대사법이라는 호평을 듣게 된다.

 63년 8월 31일 제2회 학사고시에 합격해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로는 제 1회로 졸업했다.
 극단 ‘민중’과의 작업은 그에게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달걀’, ‘대머리 여가수’, ‘별장팝니다’, ‘도적들의 무도회’를 공연한다. 이러한 극단에서 직업연극인으로 출발한 추송웅이 80년대의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상업주의 연극, 천하고 속된 연극을 하는 배우로 비판을 받았던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연극계의 방향은 대중을 위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천하고 속된 연극이 아니라 귀하고 성스런 연극을 추구한 셈이다.
 그는 83년 폐관 위기를 맞은 3.1로 창고극장을 계약하고 난 뒤 개관기념 공연으로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과 두 번째의 ‘우리들의 광대’를 시작해서 한국 공연사상 최장기 공연기록을 수립했다.
 무려 1,000회 공연을 달성했다.
 84년 일본 동경 신주쿠의 ‘모짜르트 살롱무대’에서 한국어로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을 공연함과 호루홋쿠 아카데미 극장과 오키나와의 잔잔극장,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카프카페스티벌 공연초청과 LA올림픽이 열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보름동안 공연하기로 결정했다.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으로 482회 공연, 우리들의 광대로 512회 공연, 1963년 이래 모두 2,830회 달하는 연극공연 통계를 기록했다.

 그의 에세이집에서 말했다. “첫 연습장에서 대본을 받고 역을 맡으면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라는 주인을 몰아내고 내 몸속에 기어 들어온다. 그날로부터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멀리 도망가 버리고 주인없는 몸안에서 객이 홀로 판을 친다. 아주 가끔씩 그 동안  내 몸을 빌려쓰고 달아난 녀석들은 꿈에서 만난다. 한꺼번에 수십명씩 때를 지어 몰려온다. 거기엔 온달도 있고 ‘발로르’도 있고, ‘뽈’도 있고, ‘빵집주인’도 있다. 그리고 피이터라는 원숭이 녀석까지 틀림없이 놈들은 그 어느날 밤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와서 기어이 내 숨통을 끊어버리는데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내 영혼을 이끌고 저들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지..
 그래서 나는 항상 슬프게 말한다. 배우는 전생에 죄지은 자들이라고.. ”

 밤낮의 공연에 왜 건강을 생각지 않았는지 추송웅은 85년 12월 29일 새벽 4시쯤,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경희대학교 부속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하오 3시 17분 타계했다. 죽음의 원인은 폐혈증과 급성 신부전증이 겹친 급환이었다.
 85년 12월 31일 모든 사람들이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송년의 들뜬 마음으로 종종걸음 칠 때 그가 마지막 잠든 묘지의 유택은 외진 구석 어쩌면 겨우 하나 남은 자리 변두리의 참나무 숲이 있는 쓸쓸한 곳이 되고 말았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팔당공원묘지 그곳에는 스포터라이트도, 관객들의 박수도, 분장실도 없다. 그리고 검붉은 황토흙 그 자연의 조명과 셋트와 효과음, 황토흙의 의상을 덮고 저승의 영원한 무언극 무대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