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이 15세 때 구국안민을 구하기 위해 출사에 뜻을 두고 축령산과 금강산에서 도인과 지사를 만나 천문학과 지리학 그리고 무술연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가는 한 여자종이 머리에 이고 가는 광주리 안에 얼굴에 분을 진하게 바른 여자귀신이 앉아 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고 괴이하게 여겨 따라가 본 즉, 한 대가 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그 집안에서 곡성(哭聲)이 낭자하여 대문을 두드리고 그 곡성의 사연을 물어보니 작은 따님이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남이 장군은 그 여자 귀신의 짓임을 직감하고 내가 들어가서 한번 살펴보면 살릴 수 있겠다고 하였으나 그 당시의 사회 상황을 살펴보면 내외법(內外法)이 엄격하여 외관 남자가 타인의 여성들이 기거하는 방에 임의로 들어갈 수 없는 처지에 처해 있는지라 남이장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중에 그 처녀의 아버지가 말하기를 “사람이 죽었는데 그 엄한 내외법을 다 지킬 수 없다” 하고 남이를 안방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안내를 받은 남이는 처녀가 기거하는 별당으로 들어가 보니 광주리 안에 담겨져 온 분두귀(粉頭鬼)가 낭자(娘子)의 가슴을 타고 앉아 있다가 남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슬며시 내려 앉으니 낭자가 의식을 차리고 살아 있다가 남이가 밖으로 나오니 낭자가 또 죽었다고 소동이 이는지라 남이가 방금 가지고 들어간 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집 주인이 대답하기를 먼 친척이 보내온 홍시(紅柿) 이온데 낭자가 맨 먼저 먹고 숨이 막혀 죽었다고 하였다. 

남이가 다시 별당에 들어가 분기(粉氣)를 퇴치하고 사귀(邪鬼)를 다스리는 방문과 약의 처방서를 주어 죽어가는 처녀의 생명을 구하니 그 낭자가 바로 권세가 당당한 좌의정(左議政) 권람(權覽)의 넷째 딸이라 하였다. 권람은 기이한 일로 딸을 살려 인연이 되었으므로 남이총각과 정혼(定婚)을 하고자 점을 치니 이 사람이 반드시 죄사(罪死)하리라하여 실망을 하였는데 다시 딸의 명을 점치니 복자(卜者)가 말하기를 '명은 남편보다 더 짧고 아들은 없겠으나 복은 누리되 모진 죄앙이나 화는 당하지 않을 점괘이오니 사위를 삼음이 옳겠다' 하여 점쟁이 말 그대로 따랐는데 과연 권씨 부인은 남이장군보다 먼저 작고하여 화를 면하였다.

이 혼인설화는 연려실기술 대동기문 등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야사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주장할 바가 못 되는 내용이다. 오히려 안동 권씨 가문과의 교류는 양촌 권근 선생의 매화(梅花)시인 남씨댁 매화 3수의 일화에서 나오듯 권람의 조부인 문충공 권근과 남이의 고조부가 되시는 춘경공 남재는 조선건국 초기의 오랜 교분을 쌓아 양가간의 깊은 교류를 해온바 서로의 집안 내력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이고 남이의 조부이신 소간공 남휘는 정선공주(태종대왕의 4녀)와 결혼하였기 때문에 굳이 분두귀의 설화(신화)로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이 오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건 주지된 사실이다.

계유정난 일등공신으로 세조5년 무관 시제관으로 나온 권람의 눈에는 서울장안에 소년장군으로 알려져 있고 무과에 장원급제한 남이의 늘름한 모습과 16살에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장재(將材)로 돋보였기 때문에 가문간의 정혼이 이루어졌다는 설이 더 신빙성을 얻는다. 특히 권람은 평소 사위 자랑을 많이 해서 관포지교인 한명회와의 입담에도 자주 거론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우의정 권람에게 아끼던 말이 한 필 있었는데 어찌나 사나운지 주인외의 다른 사람이 접근하면 걷어차고 함부로 날뛰어서 아무도 타지 못했다. 권람은 무과장원으로 급제한 사위의 실력이라도 시험해 보려는 듯 사위인 남이에게 자랑삼아 한 번 타보겠느냐면서 은근히 권하는지라 이에 남이는 고삐를 잡아채듯 단숨에 올라타고 급히 채찍질해서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을 지나 개성의 박연폭포를 한 바퀴 돌아오니 반나절이 채 안 걸렸는데 말의 잔등에는 땀이 장(醬) 흐르듯 하니 남이는 웃으며 '이 말은 장인이 타시면 준마일지는 모르나 제가 타기에는 약해서 전쟁에서는 쓸모가 없을 듯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 뒤 남이는 함경도를 다녀오는 길에서 만난 소금장수의 적마(赤馬)를 보았는데 말라 비틀어져 뼈가 앙상하고 잔등에 부스럼이 가득하나 미간에 권기(權奇)가 남다르다는 것을 거금을 주고 사니 과연 신이(神異)한 명마(名馬)였다고 한다.

집안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완급에 따라 한 번(一鳴) 두 번(二鳴) 세 번(三鳴) 울음소리로 알려주는데 남이장군이 추포되던 날 밤에도 말이 세 번(三鳴)을 울었으나 장군이 수면 중에 한 번만 들었기 때문에 급변사태인줄 몰랐다고 한다. 

간교한 유자광의 중상과 모략 허위 날조의 고변에 의해 남이 장군이 체포 구금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