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사람들이 비록 학문과 지혜와 기술을 배우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용감히 힘을 기울여 정신을 바로하여 그 일을 이루도록 하지 못하는 것은 낡은 습관과 게으르고 안일한 마음이 가로막아 진실한 공부를 못하게 하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안일하고 낡은 습관의 조목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적는다. 만약 뜻을 가다듬어 나쁜 버릇을 통절히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마침내 학업을 닦을 수가 없을 것이다.
첫째, 그 마음과 뜻을 게을리 하며 그 몸가짐과 태도를 함부로 하고 다만 놀고 편하기만 생각하고 구속과 견뎌내는 의지를 싫어하는 것이다.
둘째, 항상 행동하기를 좋아하여 안정을 이기지 못하고 야단스럽게 드나들면서 떠들썩하게 날을 보내는 그런 것이다.
셋째,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속에 빠지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다가도 남들에게 따돌림을 받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넷째, 글이나 말을 청산유수 같이 잘하여 남에게 칭찬을 받기를 좋아하며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표절하여 기이하고 공교하게 글을 꾸미어 써 내는 것이다.
다섯째, 글씨나 편지 쓰기에 공들이고 거문고나 비파 타기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일삼고,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면서 스스로 깨끗한 운치라고 떠들어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일없는 사람을 모아서 바둑이나 놀음하기를 좋아하고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면서 다만 떠들기를 일삼는 것이다.
일곱 번째,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것을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여 나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먹는 것을 심히 부끄러워하는 그런 것이다.
여덟 번째, 욕심을 내는데 절도와 의리가 없이 능히 옳고 그름이 바르지 못하고 음악이나 여색에 빠져 그 맛을 꿀과 같이 여겨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나태하고 낡은 습관은 마음과 정신에 해가 될 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사람의 뜻을 굳고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행실을 착실하게 하지 못해서 오늘 한 것을 다음날에 고치게 어렵게 하고 아침에 그 행동과 버릇을 뉘우치다가 저녁에는 이미 또 나쁜 버릇 그대로 한다. 그러니 반드시 용맹스러운 기운을 내어 한칼로 상쾌하게 뿌리 채 끊어버리듯 마음과 뜻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한 남은 줄기라도 없애고 늘 크게 반성하여 마음에 한 점 낡은 습관의 더러움도 없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학문을 깊게하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학업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참된 마음으로 그 길로 향하고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인해서 그 뜻을 어지럽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공부를 하는 기초가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