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살아가면서 가식적인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면서 대화의 도마 위에 ‘가식’이라는 단어를 즐겨 올리는 이가 있다. 그의 아주 과거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최근 근황으로 볼 때 그의 언행이 일치함에 동의한다. 그는 요행이나 운수대통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노동 가치만 믿고 몸으로 부닥치며 산다. 기계도 마찬가지지만 육체를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채 부려 먹기만 했으니 206개 뼈마디가 온전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자식들 온전히 공부시켰고 제법 돈도 많이 모았을 거라 친구들은 짐작하고 있다. 모임에 와서 직업병 운운하며 심각하게 엄살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의 얼굴 한편에 뿌듯함이 베여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엄살이 엄살로 끝나길 친구들은 간절히 바라지만 말이다.
 멀리 봄 내음이 아랫목 막걸리 누룩 괴듯 스멀스멀 몰려온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염치도 없이 상춘객을 꿈꾼다. 정작 상춘의 자격이 넘치는 그 친구는 꿈도 꾸지 않을 텐데 가식과 요행으로 살아가는 듯한 내가 감히 봄놀이를 꿈꾸다니 비난받아 마땅하리라. 그러나 꿈과 희망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있는 것이기에 무작정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 한다. 볼펜심을 지탱하는 스프링은 누르고 눌러도 튕겨 나온다. 봄의 새싹은 동토가 아무리 옥죄고 동여매도 튕겨 나온다. 이렇듯 봄은 희망과 꿈이 있기에 지위고하 막론하고 노동이나 노숙이나 가리지 않고 그냥 튕겨 주는 것이다.
꿈과 희망 하나 달랑 가져 나왔을 때 270개 뼈마디였으나 폭염에 열정적으로 살다 보니 제 맘대로 이어 붙여 206개로 줄은 뼈마디, 각기 앓아 괴성 지르지 않은 데 없다. 어느덧 가을에는 희망의 결실을 본다. 그것이 곡식이든 돈이든. 인생에서 돈을 쥐는 가을이 황혼 같은 그림일까. 쉼이 있는 겨울이 황혼일까 알 수 없지만, 겨울은 또다시 꿈과 희망을 향한 기다림의 여정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기에 기다리는 긴 어둠조차 행복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굳이 3부류로 나눠보자. 첫째는 차곡차곡 끝까지 봄을 기다리다가 그냥 맥없이 무덤으로 향하는 자. 둘째는 적당한 꿈과 희망으로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노동의 대가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자. 셋째는 끊임없이 삼태기에 돌을 들어 산을 옮기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일 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겼다 한들 세상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남들이 어리석다 하는 우공이 본 것은 노동의 신성함일 것이다. 노동 뒤 재화는 저절로 곳간에 쌓일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여, 우공처럼 열심히 일하는 그 친구를 좋아하고 때로는 존경까지도 한다.
한편으로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고 했다. 골프를 채로 치는 것인지 주걱으로 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놈이지만, 대략 공감하는 바 크다. 세상 모두 이치대로 재단한 양장처럼 꼭 맞게 살아야 한다면 재미없는 공간이다. 때로는 운에 기대기도 하고 개천에 용 나기도 하는 세상이 훨씬 살맛나지 아닐까 한다. 이루지 못할 꿈에 허구한 날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분명 문제지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 꿈과 희망이 스프링처럼 요동치기를 간절히 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