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지금은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예전에 정월대보름은 매우 큰 명절이었기에 다양한 풍속이 있었다. 대보름날이면 노인들은 새벽에 맑은 술을(청주) 한잔 마셔 귀가 어두워지는 것을 막았는데 이를 귀밝이술(聽耳酒)이라 하였다. 아이들은 ‘내더위 사소’를 외치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놀았고 또 아이들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연날리기를 즐겼다. 가정에서는 이날 찰밥이나 약밥을 해 먹었다.
서기 479년 신라21대 비처왕(毘處王金氏) 직위 10년 무신년에 왕이 천천사(天泉寺)에 행행(幸行)하는 도중에 까마귀와 쥐가 나와 쥐가 울면서 사람의 말로 말하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 가십시오’ 하므로 왕은 기사(騎士)를 명하여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여 남쪽으로 피촌(避村)까지 가니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지라 그것을 한참 구경하다가 그만 까마귀의 거처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노라니 왠 늙은이가 못 가운데 나와서 글을 바치는데 ‘피봉에는 이 글을 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안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하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 글을 가져다 왕께 바치니 왕은 두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낳으니 펴볼 것이 없다 한다. 그러나 비처왕을 보좌하는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이라 함은 서민(庶民)을 가리킴이요, 한 사람이라 함은 필시 폐하를 지칭한 것이니 펴보십시오” 하여 그 글을 펴보았다.
그런데 그 글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 적혀있었다. 직시 비처왕이 관리를 거느리고 대궐로 돌아와서 거문고의 갑(琴匣)을 보고 화살을 쏘니 그 속에는 내전분수승(內殿焚修僧)이 왕비와 간통하고 있다가 두 사람 모두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고 복주(伏誅)하였다. 그로부터 나라안의 풍습을 새로이 정리 발표하여 매년 정월초 해일(亥日) 오일(午日)에는 백사에 삼가고 조심하여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게 하였으며 정월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과 수수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며 그 풍속이 조선조 말까지 행하였으나 지금은 불행하고 있으며 그 기괴한 글이 나온 못을 서출지(書出地)라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위에 기록된 까마귀와 쥐와 멧돼지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찹쌀로 밥을 지은 다음 곶감과 밤, 대추, 고사리, 버섯 등을 꿀과 간장을 섞어서 다시 찌고, 여기에 잣과 호두를 드문드문 박는다. 이러한 조리법으로 짐승들에게 나누워 주고 또 사람도 먹었다는 기록이 용재총화(傭齋叢話)에 실려 있으니 음식 자체의 연원도 유구하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병자들이 스물 한 곳에서 찰밥을 얻어먹으면 병이 낫는다 하여 구걸의 풍속이 있었다.
농부들이 달을 보면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일과 달밤에 다리 밟기를 하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리 밟기는 특히 서울의 대표적인 대보름 풍속 중 하나였다. 다리 밟기를 한자로 답교(踏橋)라 하는데 이 풍속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교(走橋) 혹은 주백병(走百病)이라 하였다. 서울도성의 열두 개 다리를 모두 밟고 지나면 그해 열두 달의 재앙이 소멸된다고 하여 밟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가마를 타고 건너고, 지체가 낮은 자는 비갑(比甲)을 머리에 쓰고 걸어서 밟으며 부녀자는 모여서 떼를 지어 가지고 황혼을 타서 다리를 밟았다고 한다.
간혹 무례배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따라다녀 이 때문에 풍기가 문란해져서 명종 때 부녀자들의 다리 밟기를 금지하였고, 이후 조선말까지 다리 밟기는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