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월하노인은 달 아래 늙은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달빛을 구경하는 노인의 뜻이 아니고 인간 세계의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저승(冥界)의 노인을 말한다. 그래서 중매를 서는 사람을 월하노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를 약해서 월노(月老)라고도 한다. 이밖에 월하노인의 전설과 얼음 밑에 있는 사람의 전설이 합쳐진 월하노빙인(月下老氷人) 이란 말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월하노인이란 태평광기에 있는 말이다. 장안근처 두릉이란 동리에 사는 위고(韋固)가 입지가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 혼인을 하고 싶거든 이튿날 새벽 일찍 마을 뒤에 있는 용흥사(龍興寺) 문 앞에서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
일찍 양친을 잃고 장가를 들고 싶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늘 근심하던 위고는 날이 밝기도 전에 미리 절 앞으로 나갔다. 문 앞에 이르자 약속한 사람은 아직 와 있지 않고 웬 노인이 돌계단에서 배 자루에 기대고 앉아 달빛을 빌어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입니까?” 하고 묻자 노인은 웃으며 “이 책은 이 세상 책이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럼 저 세상 책인가요? 노인께서는 저 세상분이신가요?”, “그렇지. 그저 세상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이 세상을 다스려야만 하거든. 그러려면 자연 이 세상으로 나와야지만 하지 않겠나. 지금 어두운 새벽에 나돌아 다니는 사람은 거의 저 세상 사람들이지. 다만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 뿐이지”
“그럼 노인께서 맡으신 일은 무엇이온지”,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남녀 간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일세”, “그럼 마침 잘 됐군요. 실은 제가 이리로 나오게 된 것도 혼담 때문 이였는데 그 일이 잘 맺어지겠는지요”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자네 아내는 이제 세 살이니까 아직 십 오년은 있어야 장가를 들 수 있을 것이네. 이 자루 속에 있는 붉은 끈이 부부가 될 사람의 발을 서로 붙들어 매기 위한 것이고, 사람이 태어나면 이 실로 매어두는 걸세. 그러면 아무리 상대가 원수지간이든 신분의 차이가 나도 몇 천리를 떨어져 있든 서로 반드시 만나 살게 되는 것일세. 자네도 그 세 살 먹은 여자 아이와 맺어져 있으므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려해도 안 되는 것이며, 그 여자 아이를 배척해도 소용이 없는 일일세”
“그럼 어르신 말씀처럼 한다면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마을 북쪽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는 진(陳)이란 노파의 딸일세”, “그럼 만나볼 수 있을까요?” 하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늘 시장에 안고 나와 있으니까 만나볼 수 있지. 소원이라면 따라오게 내가 가르쳐 줄테니” 하고 노인을 따라 한참 가다보니 한쪽 눈이 먼 노파가 계집아이를 품에 안고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어서 노인은 말하기를 “저 계집아이가 자네 배필 일세”라 하였다.
“저걸 언제 키워서 배필이 된단 말인가. 차라리 죽여 없애고 말리라” 위고는 무심결에 말이 튀어 나왔다. 노인은 깜짝 놀라 “죽이다니! 그 아이는 장차 아들 덕으로 국가에서 주는 봉록까지 받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기가차군. 누가 저런 거지 딸에게 장가를...’ 위고는 자기 집 하인에게 많은 돈과 칼을 주어 그 어린애를 죽이고 오라고 시켰다. 그러나 하인은 그 아이의 가슴을 찌른다는 것이 칼이 빗나가 눈썹 사이를 찌르고 돌아와 보고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나 조상의 음덕으로 위고는 상주(相州)의 관리가 되었다. 영리한 그는 상주장관의 신임을 얻어 장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열일곱 살의 한참 피어나는 꽃과 같은 얼굴이었는데 언제나 꽃 모양의 종이를 두 눈썹 사이에 붙여 두고 있었다. 결혼한 지 일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위고는 문득 옛날 일이 기억에 남았다. 혹시나 하고 다그쳐 까닭을 물었더니 아내는 울며 사실을 말했다.
“저는 장관의 친딸이 아니고 수양딸이었습니다. 저의 친 아버지는 송성현 군수로 있을 때 돌아가시고 그 뒤 어머니와 오빠도 죽고 없어 진(陳)이란 노파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제 나이 세 살 때 시장에서 괴한의 칼을 맞았는데 그때 상처가 남아 이렇게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진노파는 한쪽 눈이 멀어 있지 않던가요?”, “그렇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하니 “그대를 찌르게 한 것은 바로 나였소” 하고 지나간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해 주었다. 그 뒤로 부부는 한결 정답게 살게 되었는데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뒤에 안문군(雁門郡) 태수가 되고 어머니는 태원군 태부인(太原郡 太夫人)이란 작호를 받았다.
이상은 남녀의 인연은 억지로 안 된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