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주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고집불통인 사람을 보고 교주고슬이라고 한다. 거문고 줄을 가락에 맞추어 타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옮겨야만 된다. 그런 것을 한번 가락에 맞추었다 해서 아예 기둥을 아교풀로 꽉 붙여 버리면 다시는 가락에 맞는 소리를 낼 수가 없다.
 혼자 틀림없이 가락에 맞추어 두었는데 틀림없이 제대로 소리가 날텐데... 하고 중얼거려 봤자 제 소리가 날 리가 만무하다. 이와 같이 한 번 무슨 일에 성공했다 해서 언제나 그 방법이 성공하는 길인 줄 알고 때와 장소와 그 환경에 따라 변경하고 뜯어 고칠 줄을 모르면 영영 다시는 성공의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둥을 풀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타는 격이다. 고(鼓)는 북이란 뜻이 아니고 여기서는 탄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중국사기 염파 인상여(廉頗 藺相如) 열전에 나오는 말인데 그 대목과 연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에 괄(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영민한 재주로서 병서(兵書)를 통달하여 그 어려운 병법을 모르는 부분이 없이 숙달하였다. 가끔 그 아버지가 이론에 몰리고 뒤지곤 했다. 조사의 부인이 아들이 그같이 총명한 것을 보고 장군의 집에 장군이 태어났다면서 기뻐하자 조사의는 부인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전쟁이란 죽고 사는 사형장이다. 한번 죽으면 물릴 곳도 없고 하소연 할 곳 없는 것이 전쟁이다. 많은 병사를 통달하였으나 이론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론만 가지고 경솔하고 가볍게 이러니 저러니 청산유수 같이 토설하는 것은 장수로서 가장 삼가야 할 장수의 책무다. 나 죽은 후 앞으로 괄이 대장이 되는 것을 극구 막아야 한다. 만약 괄이 대장이 되면 조나라는 패망하는 참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부디 대장이 되는 일이 없도록 부인이 막아주시오. 하고 조사는 숨을 거두었다.
그 뒤 진나라 대장군 고상주가 이십만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침략해 왔다. 조나라 명장 염파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웠으나 여러번 패전하여 불리했다. 염파는 자기 힘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진지를 굳게 다지고 방어에만 힘을 기울였다. 그러자 진나라 군중에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간첩을 들여보내 헛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 사람은 조사의 아들 조괄이 조나라 대장이 되면 어쩌나 하고 겁을 먹고 있다. 염파장군은 이제 늙어서 전쟁선두에 나와서 싸움을 회피만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렵지가 않다.
이 간첩의 헛소문에 귀가 솔깃해진 조나라 임금은 염파대장 대신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려 했다. 그때 인상여가 이렇게 반대했다. 임금께서 이름만 듣고 조괄을 쓰려 하시는 것은 마치 기둥을 아교로 붙여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전해준 책을 읽었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나라 임금은 인상여의 충성스러운 간언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했다.
조괄은 대장의 막중한 의무를 맡은 그날부터 자기가 알고 있는 병서의 가르침에 따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군령들을 전부 뜯어 고쳤다. 그리고 참모들이 말하는 작전 의견을 하나하나 병법을 들어 반박하고 자기주장대로 밀고 나갔다. 이리하여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론만의 작전을 감행한 끝에 40만이란 대군을 몽땅 죽여 버리는 중국 역사상 최대 최악의 참패를 가져오고 말았다. 기둥을 풀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니 소리가 엉망이 될 수밖에 학벌이나 지식을 뽐내는 애송이 상관을 모시는 실제 경험자들의 고충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 가지고 사회생활에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의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