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경남JC특우회 부회장

독수리 선생님, 중(스님)이 되고 싶다며 철중에서 명퇴한 김 선생과 별다른 계획 없이, 느닷없이 셋이 어울려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봄인 줄 알았는데 벌써 여름이 역 광장에 몰려와 노숙자와 끽연자 사이에서 바닥을 벌겋게 달구고 있었다. 백수 같은 놈이 연금 받는 두 사람과 나란히 세월을 낚으러 간다니 백척간두에 선 불안, 할 일은 없되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어째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이런 내 맘 눈치 챘을까? 두 김 선생, 연신 “마음을 내려라!”, “훌훌 털고 갔다 오자.”며 애써 번갈아 위로한다. 광장 아래로 1호선 지하철에 탔다. 노약자석을 총알처럼 탈환한 독수리 선생의 눈가에 훈장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보고 둘은 물끄러미 서서 웃음을 참았다.  
 1호선의 종착역, 원효대사를 찾아간 요석공주와 아들 설총이 잠시 머물렀다는 소요산역까지 가야 한다. 하필 우리가 탄 기차는 소요산에 훨씬 못 미쳐 ‘양주시’까지만 간단다. 양주역전에 땅거미가 내리니 금세 싸늘한 한기가 몰려왔다. 길거리 풍경도 여태껏 과 사뭇 다르다. 하늘에 군용헬기가 날고 외국인과 용병, 군용차량이 즐비하다. 어디선가 사격 소리도 들려온다. 낯선 풍광에 위기감마저 돌았지만, 작은 배낭을 짊어진 셋은 살짝 외면한 채 여행의 설렘을 각자의 방법대로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운명의 순간이 왔다. 소요산역에서 맞아야 할 우리 일행을 배려 차원에서 1시간가량 거꾸로 달려와 양주역에서 픽업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도연스님’이다.
 “사람들이 말이야…,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다음 차를 타면 바로 소요산까지 오는데 고걸 못 참아…, 이 스님 피곤하게 말이야!” 독수리 선생과는 잘 아는 사이라지만, 아! 첫 만남치고는 매우 퉁명스럽다. 하지만 자세히 쏘아보니, 뿔테 안경 너머 눈웃음이 장난이 아니다. 환한 민머리도, 청아한 목소리도, 더욱이 탱크 같은 카메라에 대포 같은 렌즈가 운전석 뒤 양탄자 위에 정성스레 놓여 있다. 분명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다.
 “절엔 별로 먹을 게 없어…, 밥 먹고 가야지? 포천에 마늘보쌈이 유명해…, 먹고 가지!” 남북한이 대치한 살벌한 전운 복판에서 포천 막걸리 두 병을 곁들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돼지고기를 스님과 함께 해치웠다. 스님 법명을 딴 ‘도연암’은 포천과 철원의 경계에 자리한다. 따라서 포천시장과 철원군수의 환경정책은 모두 도연 스님 결재 없이는 불가한 듯 보였다. 어떤 학자보다 전문가이기에 거침없다. 단호하다. 그러나 ‘절대 겸손’ 그 자체다. 마음이 구슬이라면 옥쟁반에 옥구슬처럼 청명해 보였다. 윤무부 교수가 인정한 우리나라 절대지존 ‘황새 전문가’이시니 그럴 법도 하다.
 숲 속 곤줄박이, 떼새, 박새 등이 날아와 머리와 손바닥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먹이 먹는 희한한 장면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분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도연스님’인 것이다. 
 일행 첫날은 포천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황새’ 이야기로만 밤을 새웠다. ‘새’ 하나가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딱히 부처와 불법은 어디에도 없다. 초라하지만 고즈넉한 「gallery 108」에 걸린 황새 사진 모두가 부처고, 스님의 자잘한 일상 대화가 상대의 108가지 번뇌를 자연스레 내려놓게 하는 마법이 있는 듯하다. 많은 스님을 만났지만 이처럼 오묘함은 처음이다.
 법정 스님의 제자이신 도연 스님과의 첫날밤, 사람 향기가 꽃향기보다 더 찐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새벽녘 잠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창문 커튼은 젖히지 마라” 하신다. 날이 밝아오니 조립식 절간 주위 숲은 도회지 연립주택처럼 ‘새집’이 빼곡하다. “젖히지 마라” 함은 무엇 하나 소유하지 않으며,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운 부처(새)가 놀라면, 스님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