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부고성문화원 이사

2천 5백년 전, 전설처럼 아득한 옛날 세상 저편에서 숲속 어딘가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그 풍경을 상상하면 그 속에서 태어나 2천 5백 년이란 시공을 초월하여 가르침을 전하는 ‘벼락처럼 단숨에 자르는 지혜의 완성’이란 뜻을 지닌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多經 일명, 금강경)』의 한 장면이 그림처럼 떠오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 진한 감동과 함께 눈물이 솟아납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스님들 1,250명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세존(世尊)께서는 식사 때가 된지라 의복을 갖추시고 바리때(밥그릇)를 드시고 사위의 큰 성안에 들어가시어 그 성에서 탁발을 하시는데 차례차례로 밥을 빌어가지고는 본디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시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공양을 마치시고 나서 의복과 바리때를 거두어 치우시고 발을 씻으시고. 그분을 위해 마련된 자라에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펴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앉으셨습니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스승인신 세존이 계신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하고는 스승의 주변을 세 번 돈 다음에 한쪽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때 장로 수보리 존자가 모인 여러 사람들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벗어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손히 세존께 말씀드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선남자선여인들로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의 마음을 낸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좋은 말이로다. 참으로 좋은 말이로다. 그러니 수보리여, 주의를 기울여 잘 들어라 이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응당 이와 같이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이 세상에 있는 일체 중생의 종류인 알에서 나는 난생(卵生)이거나, 태에서 나는 태생(胎生)이거나, 습기로 인하여 나는 습생(濕生)이거나 저절로 화생되는 화생(化生)이거나, 색깔이 있거나 색깔이 없거나. 생각이 있거나, 생각이 없거나를 가리지 않고 생명체의 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들, 존재하는 이 모든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여야 한다. 아무것도 남가지 않는 무여열반의 세계로 인도하여야 한다.” - 이하 생략 - 』

이것은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 아름다움이 눈물이 나도록 정겹습니다. 세존과 제자들이 가사를 걸치고 밥그릇을 들고 가을하늘을 나는 기러기처럼 한 줄로 늘어서서 사위의 큰 성안에 들어가 차례차례 탁발을 하는 풍경이, 탁발에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신 다음 의발을 치우고 발을 씻어 시고 자리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으시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러하신 세존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모인 제자들의 자세가 그렇습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평온하고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이윽고 상수제자 수보리 존자가 일어나 앞으로 나서더니, 가사 한 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한 다음 묻습니다. “세존이시여...”세존께서 천천히 입을 열어 답합니다. “수보리여! 주의 깊게 잘 들어라...”』 
 그토록 아름다운 스승과 어여쁘신 제자님들, 2천 5백년 전에 있었던 한 장면이 그림처럼 떠오르며, 그 다음 장을 열면 수보리 존자는 세존의 가르침에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넘실대는 눈물의 강이 모든 해석을 떠내려 보냅니다. 아, 나는 눈물의 강에 배를 띄웁니다. 기쁨의 배, 웃음의 배... 그리고 그 배위에 삶의 돛대를 답니다. 세존의 입김은 자비의 바람이 되고, 나의 배는 넘실넘실 춤을 춥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목적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웃음이란 스승이 나를 찾아옵니다. 나는 통쾌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이라는 난해한 경전에 대한 구구한 해석은 이미 온데간데없습니다. 2천 5백년 전 수보리존자가 세존의 가르침에 감동하여 흘린 눈물이, 기쁨이 되어 시공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어,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기를 축원합니다.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청신한 연초록 신록이 온 산야를 장식합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 날,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5월은 참으로 뜻 깊은 달입니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인지도 모릅니다.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과 그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의 올바른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깃든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생각해 봅니다. 불기 256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