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5월 연두는 어떤 꽃보다, 어떤 향기보다 강하다. 간밤에 세찬 봄바람이 비를 몰고 천지를 뒤집을 듯했는데, 아침 창가 연두 이파리는 그저 담담히 웃고 있을 뿐, 외려 저들끼리 어린아이처럼 재잘거리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연약한 연두로 보이지만, 그들 간밤은 처절한 생의 사투와 긴 인고의 역사가 있었음을 스스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느낌 좋아?”라고 물을 뿐이다. 오십여 차례 훌쩍 넘어 만나는 봄, 뫼비우스 띠 속을 돌다가, 돌다가 제자리에 왔건만 느낌은 항상 다르다.
 대지의 연두와 싱싱한 푸른 바다의 교차점, 고성의 봄은 비싼 미식가의 입맛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입에 향을 돋운다.  쌀뜨물을 받아 무를 썰어 넣고 도톰한 도다리, 빻은 마늘, 소금, 연두 쑥만으로 조합된 ‘도다리쑥국’은 생각만 해도 입속에 침이 돌지 않은가. 우리의 조상이신 단군의 어머니는 마늘과 쑥만으로 세상에 났으니 5천 년 역사를 거슬러 격세지감이다.
 광어, 가자미와 달리 도다리는 남해에서만 난다. 그중에서 청정 자란만의 단단하고 깨끗한 모래층 바닥에서 난 도다리가 영양가나 맛의 차원에서 제일이다. 도다리는 전어와 달리 양식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4년이면 천수를 다하기 때문이다. 전어 또한 진해, 거제, 사천, 여수, 자란만 등지에서 나긴 해도 자연산 고성 전어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해서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브랜드 시원은 고성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참에 브랜드 특허등록을 고성군 앞으로 해놓고 ‘우리 것’이라고, ‘함부로 사용하지 마라’고 우겨 봄직도 하다. “고성 하모,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재미있는 등식이다.
 지금 고성 ‘자란만’에는 만 원짜리 낚싯대 하나만 들면 밤새도록 도다리를 잡을 수 있다. 낚시 기술, 필요 없다. “던져라”, “당겨라” 손맛, 입맛 모두가 지천으로 늘렸다. 어족자원 씨를 말려서는 아니 될 일이다. 저인망이나 무차별 통발 등이 문제면 문제지, 낚시로 인해 씨가 마를 까닭은 없다.
 도다리 회는 큰놈보다 작은놈이 제격인데 15cm 이하는 불법이란다. 아무튼, 고발정신이 투철한 사람과는 버디를 하지 않는 것이 좋고, 뼈째로 먹는 작은 도다리가 분명 횟감으로는 최고다. 미끈거리는 비늘만 치고 껍질은 그대로 둔 채 머리는 잘라내어 내장만 처리하고 민물에 살짝 헹군 뒤 마른 수건에 깨끗이 닦아 듬성듬성 썰어 내면 끝이다. 꼬리 씹는 맛도 쏠쏠하기에 잘라내면 손해다.
 손바닥에 연두 깻잎 두세 장 깔아 도다리 한 마리 분량을 담대히 올려놓고 된장, 초장 담뿍 담아 땡초 한 조각 얹어 눈물이 꾸역꾸역 괴어 나올 때까지 씹어 먹고는 잠시 눈물 훔친 손으로 풋마늘 된장에 쓱 무쳐 입가심하면 ‘別有天地非人間’이 따로 없다. 물론 종이컵에 프로(%) 있는 맑은 물 한 잔이면 “카~아!” 무릉도원이 따로 있음이 아니다.
 ‘도다리’만도 못한 정치인이 가장 많이 지껄이는 소리가 ‘화합, 소통, 협동, 신뢰, 믿음’이다. 도다리는 입이 아닌 눈으로 말한다.  쏠린 눈으로 혼자는 앞을 나아가지 못한다. 둘이 버디가 돼서 화합하고 소통하여 평생을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 났다 하여 비목어(比目魚)라 하고, 두 마리가 붙어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지극한 부부에 비유되는 고기가 바로 ‘도다리’이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도광양회’를 위광양회라고 더듬거렸더니 친구가 한술 더 떠서 ‘좌광우도’의 뜻을 묻는다. “좌익은 데모에만 광분하고, 우익은 세금 축내는 도둑놈”이라 했더니. “광어, 도다리한테서 더 배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