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은 유난히 밖으로 나가길 좋아한다. 바깥 날씨가 좋거나 갑갑하면 밖에 나가자고 조르기 일쑤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모처럼 날씨가 따스했던 1월 중순의 어느 휴일 오후 아들의 갑갑증이 발동하였다. “아빠, 뭐 살게 있는데 잠시 나갔다 와요.” 아내도 잠시 일을 보러 사무실에 간 사이에 아들 녀석은 뿌리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알고 조르기 시작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잘 알고 있는지라 미리 항복하고 저녁 반찬거리도 사고, 차에 주유도 할 겸 이웃 고성의 시장으로 짧은 나들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고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천에서 약 15분만 차를 몰고 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고성 시장에 도착해보니 어물전의 큰 대구 몇 마리와 싱싱한 톳나물 정도가 눈에 뜨일 뿐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차를 타고 사천으로 돌아오는데 고성 읍내를 벗어나 약 5분 정도 사천 쪽으로 운전하니 길 왼편에 갈모봉산림욕장이라는 안내 간판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자주 다니는 길이었지만 그날은 문득 산림욕장에 들어가 보자는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가 보자고 하니 좋아하였다.
 신호를 받고 잘 정돈된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약간 가파른 높이의 길이 나타나며 육중한 편백나무가 질서 정연하게 맞이하였다. “아니 이런 곳에 멋진 숲이 언제?” 감탄을 하며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을 하였다.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내리니 밀려드는 상쾌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싱그럽고 산소가 가득 든 맛 좋은 공기가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6살인 아들 녀석은 신선한 산소를 가득 마신 탓인지 바람돌이 모양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자연 학습장인 듯한 곳까지 내달았다. 정말 잘 손질된 그리고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숲의 싱그러움을 천천히 음미했다.
 건강이 썩 좋지 못한 나는 깊은 산속 산사에 종종 머무르며 원기를 회복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 편백나무숲도 피톤치드 성분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터였고 남해의 다른 휴양림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만끽한 적이 있었다. 갈모봉산림욕장의 규모는 아담하고 우리가 항상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아들 녀석과 천천히 평탄한 임도를 10여 분간 산책하는데 갈모봉산림욕장을 관리하시는 소장 고성문화원향토사연구소 최영부 님을 만나게 되었다. 너그럽고 훈훈하게 이곳의 조성 역사와 갈모봉산 이름 유래 알려주시고, 수종과 숲의 규모, 산림욕 등에 대해 자상하게 안내 받았다. 그리고 천천히 숲의 구석구석을 마치 친구를 대하여 주듯이 서서히 거닐며 아들과 동행한 나를 배려해 완만한 길을 안내해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 학문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어느덧 1시간 정도를 산책하게 되었다. 땀도 약간 나려고 하고 얼굴도 상기되었지만 몸에는 힘이 넘치는 듯했다. 문득 “아! 이것이 산림욕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별 볼거리가 없었던 고성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찾게 된 갈모봉산림욕장이 그날 얻은 최고의 수확이 된 것이었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도 되고 아들 녀석도 물을 마셔야 된다고 하기에 최영부 님과는 다음에 또 뵙겠다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사천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후 10여 분 있으니 아내도 돌아오고 고성 시장에서 사온 톳나물을 반찬으로 그날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상쾌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평상시에도 종종 산책을 하는 편이지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산림욕장이 있는 것을 안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피톤치드의 발산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멀리 깊은 산속까지 갈 것이 아니라 간단한 도시락을 싸 들고 와 잘 정리된 이곳에서 편안한 낮잠을 한 번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