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주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공덕비(功德碑)는 흔히 선정비(善政碑),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 거사비(去思碑) 라고도 부른다. 불망(不忘)이나 거사(去思)는 모두 공직자가 떠나고 난 뒤에 지역민이 그의 업적과 공덕을 잊지 않고 그리워 한다는 뜻이다. 원래 공덕비는 공과 덕이 탁월한 인물에 대하여 백성들이 감사의 표시로 자발적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공덕이 탁월한 인물은 공덕비 세우는 것을 극구 사양하는데 공덕이 없는 인물들이 도리어 공덕비 세우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조 때 탐관오리들은 학정을 자행하다가 관직에서 떠날 즈음이면 자신의 재임을 기념하기 위해 지역주민 대표자에게 자신의 공덕비 세우는 일을 독려하였다. 탐관오리의 닦달에 의해 아전과 주민대표들은 관아의 비용이나 백성들에게서 강제로 염출한 금액으로 공덕비를 세워 주웠다. 악행을 저지른 공직자는 자신이 떠나도 자신을 길이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거사비를 세웠지만 정작 지역민은 그런 공직자가 공직을 떠나고 나면 하루라도 빨리 그 공직자에 대한 기억을 잊고자 했을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별다른 저항 수단을 갖지 못한 백성들은 공직자가 떠나고 나면 돌을 던져 비석을 훼손시키곤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놀이 중에 비석치기가 있다. 자신의 돌로 상대방의 비석을 쳐서 넘어뜨리면 이기는 놀이다. 조상들은 비석치기 놀이를 통하여 삐뚤어진 공직자를 조롱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청파(靑坡) 기건(奇虔)이 제주목사에 부임하니 아전들이 목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전복요리를 올렸으나 모두 물리쳤다. 아전들은 목사가 전복 먹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후에는 전복요리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당시 제주해녀들은 전복 진상에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들의 노고와 고충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기 위해서 우선 자신부터 전복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까지 일체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제주도에는 부모가 죽으면 시체를 산골짜기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기건 목사는 이 광경을 보고 그냥 방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장사지내는 법을 가르쳐 이후부터 제주도민들은 정중하게 시체를 땅에 묻고 엄숙하게 상례 법에 의해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 1445년<세종27년> 제주도에 나병(癩病)이 크게 번졌다. 제주도 사람들은 부모나 처자식이라 할지라도 서로 전염될까 두려워 환자를 인적 드문 곳에 옮겨서 스스로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때 제주목사 기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나환자 격리 치료소인 구질막(救疾幕)을 바닷가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나환자 1백여 명을 모아 고삼원(苦蔘元)이라는 약을 정성스럽게 달여 먹이고 바닷물로 소독하여 났게 하였다. 목사는 임기가 끝나 한양으로 돌아갈 때 질병을 고친 사람들이 목사의 손을 붙잡고 서로 울면서 전송하였다고 한다. 목사일행은 화북 포구에서 배에 올랐다. 수많은 백성들은 포구에 나와 목사를 전송했다. 그가 탄 배가 망망대해에 이르렀을 때 광풍이 불고 파도가 일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모두 사색이 되어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목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이 섬에 와서 한 가지도 사리사욕을 취한 것이 없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 부정을 하여 해신(海神)이 노한 것이 아닌가. 일행 중에 누구라도 섬의 물건을 챙겨온 자가 있으면 내 놓으라고 한 것이다. 이때 한 군졸이 엉금엉금 기어 나와 하는 말이 ‘행차가 막 떠날 때 섬사람 한명이 갑옷 한 벌을 바치면서 바다를 건넌 후에 사또에게 올려 그들의 정성을 대신 전해 달라고 하기에 숨겨 왔습니다’ 라고 보고 하였다. 그러자 목사가 말하기를 이제 그 갑옷을 바다에 던져라고 말했다. 군졸이 갑옷을 바다에 던지자 즉시 파도가 잔잔해 지기 시작했다. 갑옷을 던진 곳을 투갑연(投甲淵)이라 불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