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文人)보다 무인(武人)이 좋아 남달리 이순신 이야기에 골몰했다. 어릴 때는 고전읽기와 성웅 이순신이란 영화를 보았으며, 4~5십대는 영화 '명랑'과 소설 ‘원균 그리고 원균’ ‘칼의 노래’등을 읽었다. 혹자는 50대에 삼국지를 읽으면 교활해진다고 했던가? 지천명을 넘겨 이순신을 접하니 승리의 아우성에 하늘 접은 구국명장(救國名將)의 고독한 애국 혼이 가슴을 뚫고 온다.
근접전(近接戰)이나 백병전(白兵戰)도 아닌해전에서, 그것도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 해전에서, 쫓겨 가는 왜군의 유탄에 맞아 승전군(勝戰軍) 최고 장수가 죽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조선의 역사적 상황은 왜군의 침공도 난제이었지만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질러 조선이란 국가가 명이 다했음을 나타내는 징후가 여럿 있었다.
당 시대에 이순신 같은 인물은 난세의 영웅이 되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 아니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난세의 영웅이 될 인품과 능력 그리고 조건과 명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명이 다한 왕조의 전복(顚覆)을 꿈꾸지는 않았다. 왕조에 대한 대의(大義)에 충실하고 욕심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무능한 왕이었지만 선조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도 전, 계략으로 백의종군(白衣從軍) 하게 된 이순신은 아직 기세를 잃지 않은 왜군 때문에 간신히 목숨만은 모면한 채 죄인으로서 풀려났다. 다시 장수가 되어 막바지의 왜군을 쫓아낼 때, 이순신은 반역을 시도하지 않는 한 더는 살길이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그래서 쫓겨 가는 왜군의 유탄에 맞아 죽는 것으로 자신을 감추는 길을 선택했던 게 아닐까? 아마도 살아서 귀향을 했다면, 그는 구국의 영웅이 아닌 반역자로 죽었을 것이다.
원균 그리고 원균 이후 ‘칼의 노래’나 영화 ‘명랑’은 왕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인, 국가권력이나 정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전쟁인’의 성격과, 국가인(왕)의 근본적 불신 속에서도 전쟁의 참화(慘禍)를 끝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고독’ 같은 것에 쉽게 공감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유언에서 단지 도망가는 적의 반격을 막자는 전술적 고려만을 읽는다면, 일반적인 애국적 교훈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즉 마지막 전쟁에서의 승리가 자기 삶의 끝임을 알면서도, 그 역설적 종지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던, 혼자 죽어가야 했던 무인의 깊은 고민과 고독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죽여야 할 적 때문에 살고 충성해야할 왕 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적과의 싸움을 끝냄과 동시에 모든 것을‘놓아버려야’ 했던 “영웅의 슬픔과 고독”, 안타까움과 ‘안도’를 보지 못한다면, 이순신의 마음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토사구팽을 되뇌이다 삶에 찬바람이 엄습하여 이순신의 고독을 씹는데, 고성·통영과 한국의 미래를 고심한다는 거대담론으로 총선 홍보를 알리는 A후보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과연 영웅적 안하무인(眼下無人)답다. 해군출신 A후보도 이순신의 후예?
권불십년·화무십일홍(權不十年·花無十日紅)이라는데, 합법적 민주독재 12년 단체장을 역임하고 앞뜰에서 요트를 즐기며, 뒤뜰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도 뭐한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이 양심이 있고 염치가 있는 법이다. 미안함을 알고 고성의 안타까움을 아는 사람은 이러지 않는다. 안타까움의 가장 아름다운 모양새는 국민·군민들에게 한없이 몸을 낮추고 조용히 사는 것이다.
군수 재임 때는 인위적 통영·고성 통합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고, 총선 출마의 변에서는 통합을 주창하는 사람. 12년 동안 줄기차게10만 고성시를 외치며 온통 파헤쳐놓고 마무리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군 금고 관리를 부당한 편법으로 **에서 **은행으로(대략70억) 및 행정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사업들. 재임 중 군민의 세금으로 같잖은 생명농업을 개발하고도 가신들의 특허로 등록하는 유능하고도 기특함.
실패한 조선특구, 산업단지, 엑스포, 특히 해군교육사령부 유치 실패 등 누가 봐도 업적이라고 할 수 없는 거대 사고를 쳐놓고도 총선을 준비한다니 가히 또 다른 영웅적 처사다. 출마할 경비로 해군교육사령부 유치실패 등으로 인한 빚(지방채)이나 갚아달라는 것이 군민들의 여론이다.
혹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이미 고성군민의 고통과는 전혀 상관없는 천국일까? 12년 실패의 경험 뒷담으로 묵묵히 도와주는 겸손한 성품은 지상에 올 때 천국에 두고 나온듯하다.피땀으로 쌓아 올려온 고성의 살림살이가 무너지는 것은, 마치 무서운 티라노사우루스(육식공룡)의 무차별 공격 앞에, 완벽한 준비 없이 성실하게 절제하며 내실을 쌓지 못하고,허식적인 과정과 설익은 과일을 먼저 따 먹으려고 정글의 법칙을 적용한 설익는 멎을 부렸던 12년 민주독재 군수의 정책에 그 주원인이 있다.
 설령 각종 명목의 예산이 엑스포라는 무늬와 인지도 상승이라는 무대에 올려놓기 위한 사업에 쓰였다 하더라도, 내실 없는 허상만을 보여준 이벤트 사업에 그치지 않았던가. 공룡엑스포 관광객들이 엑스포의 어떤 면에 감탄하는가. 수천억 꿀 먹은 공룡이 끝없이 먹기만 할뿐 새끼를 낳는가 알을 까는가? 반대논리나 수입·지출을 회계분식 등으로 몰래 감추고 개인의 폼 나는 외양으로 홍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끄럽게도 전국 최장수 읍인 고성이, 엑스포와 해교사 실패 등으로 지방채를 발행했다면 그들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그 호화스럽고 야단스러운 우리들의 잔치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의 업적이 자신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나, 자신이 배신당해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고독, 적과 싸우면서도 적보다 용열한 왕 때문에 고심해야했던 상황을 생각하니 눈에서 물이 난다.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생각하면서도, 고성과 한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니 이순신의 후예라는 말은 삼가길 바란다.
그러나 깊은 고민이나 고독, 슬픔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을 싸안으면서도 조용히 죽음을 선택한 영웅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또 하나의 영웅적 길이 있음을 저 공룡 천국의 A후보는 알려주는 것 같다. 실패와 공적도 구별할 줄 모르고 자신이 해놓은 것은 모두 용감한 실패 및 업적이라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흔드는 논리는 듣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은 완전히 ‘무시로 생까며’ 스스로는 그 업적 아닌 업적에 도취돼 항상 자랑하며 폼 잡고 싶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