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천금매소란? 천금을 주고 사랑하는 여자의 웃음을 산다는 말이다. 간악하고 못된 임금의 대명사 가운데 걸주유려(傑紂幽厲)란 말이 있다. 걸은 한나라를 망친 마지막 임금이요, 주는 천하제일 은나라를 망친 마지막 임금, 그리고 유는 서주(西周)의 마지막 임금 유왕(幽王)으로써 북쪽에 유명한 견웅(犬雄)으로 불리우는 오랑캐의 칼에 맞아 죽었고 그리고 여(厲)는 심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의 폭동에 밀려나 연금생활로 일생을 마친 임금이다.
천금매소란 말은 유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말에 관계되는 부분만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왕은 요사스러운 포사에게 빠져 착하고 아름다운 황후 신씨(申氏)와 그 아들인 태자 의구(宜臼)를 폐위시켜 궁중에서 추방시킨 후 포사를 왕후로 세우고 그녀가 출산한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그런데 돈에 팔려 남의 속죄의 대가로 궁중에 들어오게 된 그녀가 불가 몇 해 사이에 여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영광된 위치에 오르게 되었건만 그녀는 일찍이 한 번도 입술을 열어 웃는 일이 없었다. 유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악공을 불러 음악을 들려주고 궁녀들을 시켜 춤을 추어보였으나 전여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유왕이 하도 답답해서 “경은 노래도 춤도 싫어하니 도대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그녀는 “첩은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언젠가 손으로 비단을 찢는 일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좋더군요” 하는 것이었다. “그럼 왜 일찍 말하지 않고서...” 유왕은 즉시 창고를 맡은 소임에게 매일 비단 백 필씩을 들여보내게 하고 궁녀 중 팔힘이 센 여자를 시켜 비단을 포사의 옆에서 번갈아 찢게 했다. 그러나 포사는 그저 좋아할 뿐 여전히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은 어째서 웃지 않는가” 이렇게 묻자 그녀는 또 “첩은 평생 웃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유왕은 “그래 내 기어이 그대가 입을 열어 웃는 모습을 보고 말리라” 하고 즉시 영을 내려 궁 안과 궁 밖을 묻지 않고 왕후로 하여금 한번 웃게 하는 사람은 천금 상을 내리리라 하고 선포했다.
그러자 지금껏 안팎으로 포사와 손발이 척척 맞아 온 괵석보(虢石蚥)가 웃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의했다. 그것은 봉화를 올려 기내(機內)에 있는 제후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해 밤을 새워 달려오게 한 다음 적이 침입해 온 일이 없는 것을 알고 어이없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가는 것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신하에 그 임금이라 유왕은 많은 지각있는 신하들의 간하는 말도 듣지 않고 괵석보의 생각대로 포사와 함께 여산(驪山) 별궁으로 가서 놀며 저녁에 봉화를 올렸다.
가까운 제후들은 예정된 약속대로 도성에 도적이 침입해 온 줄 알고 저마다 군대를 거느리고 밤을 새워 즉시 여산으로 달려갔다. 여산 별궁에서 음악이 울리고 술을 마시며 포사와 함께 즐기고 있던 유왕은 사람을 보내 제후들에게 이렇게 말을 전했다.
“다행히 밖에 도둑이 없으니 멀리서 수고할 것까지는 없는 걸 그랬소”
제후들은 어이가 없어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가 깃발은 둘둘 말아 수레에 실고 부랴부랴 돌아갔다. 봉화 불에 속아 할 일없이 달려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제후들의 뒷모습을 누각위에서 바라보던 포사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치며 깔깔되고 웃었다. 그녀의 그런 웃는 모습을 바라보던 유왕은
“사랑하는 그대가 한 번 웃으니 백 가지 아름다움이 솟아나는구려, 이 모두가 괵석보의 공이다.” 하고 그에게 약속대로 천금 상을 내렸다.
동주열국지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나서 지금까지 속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천금으로 웃음을 산다는 말은 대게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至今俗語相傳 千金買笑 盖本於此)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 뒤 얼마 자나지 않아 폐비 신씨의 친정아버지 신후(申侯)가 끌어들인 견융주(犬戎主)의 칼에 유왕이 개죽음을 당한 것은 여산에 아무리 봉화를 올려야 또 속는 줄 알고 제후들이 달려오지 않은 이유였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같은 짓들을 명색이 천자와 대신이란 사람들이 하고 있었으니 그의 지배 밑에 사는 백성들이 어찌 되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