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우리당 후보로 생각한다는 어느 정당대표의 말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당정치는 이미 실종되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 난무하는 정치판이라고 하지만 특정당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무소속 후보를 지지까지는 몰라도 자당(自黨) 후보로 인정한다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 남을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이 있는 범위내의 재산 증식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소득에 비례해 재산이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수천만 원이나 되는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고액 강연료, 영수증 없는 기부 등으로 수입이 괜찮은 시민운동가 출신 박 후보는 체어맨 승용차와 월세 250만원 아파트에 살면서 마이너스 재산 신고를 하였다.
 
 자기 단체 운영비도 모자라 쩔쩔매던 시민운동가들이 총선연대 시절에 버스투어까지 하면서 쓴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시민이라면 총선연대의 낙천ㆍ낙선운동이 특정당의 원격조정을 받고 정치인들을 남의 손으로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기 좋은 시민사회를 유용한 관제 정풍 운동내지 문화혁명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무능ㆍ부패 정치인 퇴출 리스트에 동조해준 100인 위원회에 참여한 순수한 운동가들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낙천ㆍ낙선운동을 최초로 시민사회와 연관시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시민사회 수뇌부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총선연대가 해체된 후 그 주역들은 하나씩 재단을 만들어 독립했다. 환경재단, 아름다운 재단 등이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공익사업과 나눔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민사회의 영역 의 확대라는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그 보다는 시민사회의 감시를 받던 기업들이 재단에 돈을 공개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 큰 문제는 시민사회로 향하는 기업의 기부금이 양 재단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현상을 초래하여 양 재단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풀뿌리 시민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양 재단은 자기들과 노선이 같은 시민단체만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시민단체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시민운동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극대화되고 사업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인지도가 낮은 시민운동단체는 공익사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필자 역시 시민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시민사회의 영역확대나 늘 돈이 모자라는 시민운동가들에게 유학비를 지급하여 전문성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한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1세대 시민운동가들이 공들여 쌓아 놓은 시민사회를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게 하는 역할을 박원순 변호사와 그 지지 세력이 했다는 점은 부인할 길이 없다고 본다.

 기업 후원금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론스타 기부금도 나중에 일부 돌려주었다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론스타의 기업성격을 알고 정도를 걷는다면 처음부터 받지 않았어야 할 돈이었다. 도둑질한 돈을 기부 받고 장물을 기부 받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깨끗한 돈인지를 먼저 구분하여 나눔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했어야 하였다. 론스타는 지금도 국민적 공분을 낳고 있는 외국 기업으로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인 혈세를 앗아간 우리 국민의 공적(公敵)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재단이 이 기업의 돈을 받아썼다는 것은 이 재단이 운영의 원칙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수도이전ㆍ시민운동 방법론ㆍ천안함 폭침 3대 의제를 두고 박 후보와 맞장토론을 벌이겠다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중도에 출마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그 중 천안함 폭침은 투표 전에 서울시민이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은 대한민국 인적, 물적 자원의 60%가 집중된 곳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몰래 대한민국 함정을 폭파한 북한에 대한 박 후보의 은근한 비호는 서울이 북한 공격의 최일선에 놓인 지리적 위치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 수도 방위를 공동 책임질 서울시장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분명하게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불안해서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는가?“박원순 변호사는 소신있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左傾(좌경)ㆍ左翼(좌익)을 배제하는 국가는 극우독재정권”이라고 했다. 그리고 ‘左傾’ 속에서 자유민주체제를 보완하는 긍정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주장이 다른 나라에서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니다. 한국처럼 세계에 유례없이 종북좌파가 창궐하는 곳에서는 국가보안법 없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서경석).

 사람과 조직은 늘 자기혁신을 통해 성장한다. 그래서 박 후보의 과거의 이념적 성향을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러나 박 후보는 서울시장 후보로서 앞으로 어떤 이념적 정체성을 가질 것인지를 서울시민 앞에 밝혀야 한다. 이것은 미래 지향적인 것이므로 박 후보도 흔쾌히 응하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기존 정치와 정당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시민사회가 정치개혁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안철수 돌풍과 박원순 후보를 만들었다면 박 후보는 더욱더 책임감 있게 시민의 의혹을 풀어 주어야 한다.

 박원순 후보가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약하고 정체성이 모호하다면 차라리 선거전에 사퇴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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