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지나간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불념구악(不念舊惡)이다. 지나간 일을 탓하지 않는 것을 기왕불구(旣往不咎)라고 한다. 이 말과 약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는 하나 뜻은 다르다.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지나치게 결백한 나머지 불의로 천하를 얻은 주나라의 곡식마저 먹을 수 없다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주러 죽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 백이에 대해 맹자가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즉 맹자 공손추상(公孫吜上)에 보면 맹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백이는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그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않았으며 악한 사람의 조정(정부)에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악한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 악한사람들이 정치하는 조정에 서거나 앉거나 악한 사람과 함께 말하는 것은 마치 예복(관복)을 입고 예모(관묘)를 쓰고 시궁창이나 숯검정 위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추하고 악한사람이나 악한 정치를 미워하는 마음은 군자나 선비나 일반 국민들이나 똑 같을 것이다. 그 정치인의 의복이 흐트러졌거나 갓(모자)이 비뚤어졌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후회없이 떠나버렸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제후(정승판서)들 중에 좋은 말로 그를 모시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이를 거절했다. 이것으로 보아 백이숙제가 얼마나 결백하고 남을 포옹하는 마음이 좁았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맹자는 그를 성인(聖人)이라고 했다. 다만 성인 가운데 깨끗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백이숙제에게도 반대의 일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불념구악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보면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옛 악을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원망이 적었다(伯夷叔齊 不念構惡 怨是用希)
그토록 결백하고 까다로운 백이와 숙제도 지나간 날의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지나친 결백을 그다지 원망스럽게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제 아무리 보기 흉한 짓을 한 사람이라도 오늘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반갑게 맞아주는 백이숙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어려워는 했을망정 미워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기왕불구가 의식적인 노력에서 나오는 아량이라면, 불념구악은 그야말로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성자의 초연한 심정에서 일 것이다. 지나간 일을 놓고 콩이야 팥이야 따지는 태도도 삼가 해야 되겠지만 한번 밉게 본 사람을 언제나 같은 눈으로 대하는 것은 더욱 삼가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