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삶을 살아간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언제쯤이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빠른 답을 찾기 위해 선현(先賢)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동서양의 사상가들을 비롯하여 각종의 종교에 의해 재창된 행복의 철학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리고 행복한 삶에 대한 나름의 방안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다. 명예나 경제적 부유나 건강한 생활, 현명하고 어진 배우자이거나 이상의 실현 등등... 저마다 각자의 처지에서 행복한 경험을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은 개개인이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처럼 생각된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라고 한다. 덴마크는 평균 수명도 우리나라 보다 길고 복지정책도 잘 되어있어 문맹율도 낮으며 국민 총소득도 높은 나라이다. 그와 반대로 경제지표도 형편없이 낮고 삶의 환경적 조건도 열악한 부탄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감이 경제적인 측면이 중시된 가시적인 행복이라고 하면 부탄은 정신적 심리적인 측면이 중시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느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부유할수록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어떤 조건에 있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 자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행복이란 말은 듣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 등은 문학작품에서 나오는 희귀한 표현에 속한다.
가족 공동체의 삶을 중시한 우리 정통사회에서의 행복은 가족 안에서 부자유친하고, 부부유별하고, 장유유서 하는, 본분을 지키며 화목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나는 행복이라고 하기에는 이기적인 개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된다. 이것이 우리 전통사회의 행복이었다. 그렇기에 옛날의 수양이나 처세에 관한 가르침 속에는 직분(職分)이란 개념을 매우 중요시 했고 직분을 기준으로 넘침과 부족함을 두고 인격을 가늠하기도 했다. 직분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사람의 됨됨이였고 운명이었고 지켜야 할 도리였기 때문이다.
조선조 현종(顯宗)때 호조판서의 자리에 있던 김좌명(金左明:1616-1671)의 집에서 심부름하는 최술(崔戌) 이라는 미천한 아이가 있었는데 과부인 어머니가 잘 가르쳐 글도 익히고 하여 김좌명이 판서자리에 있을 때 최술을 서리(書吏)로 임명하여 요긴한 직책을 맡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최술의 어미는 바로 상전을 찾아가 자식에게 그런 직책을 맡길 수 없으니 퇴직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유인즉 ‘제가 혼자되고 나서 아들 술이만 믿고 살았는데 처지가 어렵다보니 보리밥으로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다행히 부족하나마 대감 덕으로 학식을 얻어 대감문하에서 월료(月料)를 받고 모자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이 재물을 맡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마음이 날로 더해져서 마침내 죄를 범하고야 말 것이니, 외동자식이 형벌 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대감께서 만약 술이를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시어 버리지 않으시겠다면 다만 몇 말의 쌀을 주어 굶어 죽지 않는데 이르기만 하여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관직에 나아가서 온갖 부정과 비리에 얼룩지는 것보다 하루 세끼 밥먹고 살면서 도리에 위반되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고 술이 어머니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