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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향교
2015년 06월 01일 (월) 16:05:09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심상정 고성미래신문 논설위원
 향교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귀국 후 국학관 대사를 설치하고 공자 석전례를 시행했다. 선덕여왕16년(674)에 태감 수충이 당으로부터 귀국하여 문선왕 10철과 72 제자의 화상을 국학에 두었다. 이같이 하여 선성선사의 교지를 수습 궁행함을 근본으로 삼고 숭모하며 수학하는 유생의 교육기관이 바로 향교이다.
 고려 성종 6년에 전국 12목에 학교를 설치하고 경학박사를 배치했으며 동9년(990)에 서경에 서수원을 두고 동11년에 12목에 있는 향교에 명하여 문무 재략자를 천거하였다. 고려 인종5년(1127)에 상이 각주에 명하여 입학 광교케 하였으나, 그 후 의종 원년(1147)부터 국정 문란해지자 향교도 쇠미해졌다. 충숙왕 원년(1314)에 왕은 한산인 이곡을 각주에 순력시켜 이를 다시 부흥케 했다.
 조선조 태조 원년(1392) 즉위교서에서 제도안찰사에 명하여 향교의 설치를 강조하였고 동 7년에 성균관의 준공과 더불어 지방향교의 설치를 촉구하니 그 규모는 주현에 따라 대소의 차가 있었다. 태종13년(1413)에 각 향교에 학전을 관급하니 향교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전국 부목군현에 일교씩 설치되니 총 360교가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조국은 광복되었으나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남한에는 231교이나 해방 후 3향교가 증설되어 현재 234교가 존립하고 북한에는 109향교가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향교는 주로 경학을 공부하던 곳으로써 이는 중국 주나라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며 향교의 뿌리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수도인 평양에 태학을 세우고 경학, 문학, 무예 등을 가르쳤으며, 신라 신문왕2년(682)에 경주에 국학을 설치하고, 그 후 성덕왕17년(718)에 10철과 72제자의 초상을 그려 봉안하여 석전례를 올렸으며, 고려 성종11년(992)에 국자감이라 개칭하고 경학, 역학, 천문학, 수학, 서화, 무예 등을 가르쳤고, 조선 태조6년(1397)에 한양에 성균관을 설치하고, 다음 해에 문묘 및 명륜당을 건립하여 태학, 국학, 반궁 등의 별칭이 있었다. 
 우리 고성에서도 고려 때부터 서재와 서당이 있었으며 조선 태조의 향교 설치령에 따라 현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전하며 그 후 선조25년(1592)에  왜구의 소분으로  회진되어 선조20년(1607)에 현령 정여립의 주선으로 다시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제기고, 전사청, 동서재, 전직사, 내삼문, 풍화루를 중건하고 생생단을 설치하여 규모가 환하고 새롭게 되었다. 그러나 고종7년(1870년)에 통제사 정하응공과 본 읍 수령 유기동공이 통제영과 본읍 사이에 서로 얽혀드는 혐의를 조정하기 위한 뜻으로 조정에 장계를 올렸는데 이 해에 드디어 읍의 치소가 통제영 안으로 옮겨지고 다시 향교를 죽림으로 옮겼다. 사민들은 향교가 통제영에 근접해 있고 관부가 변방에 치우쳤다 하여 모두 답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종 12년(1875년)에 영의정 이유원공이 계품하여 고종황제의 명에 의하여 읍을 돌려오도록 전교가 있었고 향교를 복원하라는 명이 내렸다. 본읍 사림들이 경축하였다. 신상규 공이 명을 받고 현령에 부임하여 향교복구역사를 급선무로 삼아 정성을 다하여 일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성전을 비롯 10여동 건물이 건립되고 5성과 10철을 봉안하였으며 송조4현을 전내로 봉향하였고 동서 양무에 동국 18현의 위패를 종사하고 봉안식을 거행하니 한 고을의 문물이 환히 다시 밝아지고 산천초목도 모두 정채를 띠었다. 신상규 공의 공로가 이에 더욱 드러난 것이다. 서기1949년 기축에 성균관의 지시로 10철과 송조 2현의 위판을 매주하고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으로 4성을 배향, 정주2현을 대성전에 종향, 아국18현은 동서무에 연형하여 춘추중월 상정일에 석전대제을 행하고 있으며 본 향교구역은 14개 읍면인 군 전역이며 1983년 8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 제219호로 지정되었고 소재지는 경남 고성군 고성읍 교사리 270-1번지에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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