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의 요청에 따라 본 고장에서 출생한 목월 시인에 대한 정종암 문학평론가의 평론을 3회에 걸쳐 게재키로 한다.
그는 인용 및 참고문헌은 본문에 표했을 뿐,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이 평론을 기화로 기존의 목월 시 연구 서적이나 자료에서 중구난방인 목월의 출생년도, 출생지, 조모, 사랑 이야기, 가계도 등을 바로 잡고자 한다.
본 작품을 인용 시는 e,mail; jja-news@nate.com으로 동의나 허락을 구해야 한다" 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한 문학계 3관왕 작가답게 "남산공원의 '나그네' 시비를 보고 목월 시인의 궤적을 밟으면서 이에 대한 문학평론을 쓰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편집자 주>

1. 목월의 탄생지와 고향

  본명이 영종(泳鍾)인 목월은 그의 첫 아들인 동규가 태어나던 해인 1939년 <문장>지로 등단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순수 서정시인이자 신앙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의 심금에 그대로 울러퍼지는 가락으로 우리의 향수를 아름답고 높은 차원에서 노래하는 시인이다.  목월은 이보다 6년 전인 1933년 <어린이>에 동시를, <신가정>에는 동요을 발표하였다.

 이는 일찌기 시작활동(詩作活動)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목월이 서정시인이면서 중기 이후 특히 타계하기 직전까지 거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생활에서 이어지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시작(詩作)출발에서부터 동시와 신앙시를 하나의 맥으로 이어주고 있다. 그 점은 유고시라고 볼 수 있는 <크고 부드러운 손>에서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시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적 시인인 박목월은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출생하였다. 박준필(朴準弼)과 박인재(朴仁哉) 사이에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목월의 출생지(birthplace)에 대해서 여태까지 의견이 분분했었다.

 지금도 목월의 출생지가 "경북 경주다. 경남 고성이다."고 기록하고 있는 실정에 이제 출생지를 바로 잡아야 한다. 목월은 1915.1.6 옛 소가야(小伽倻) 도읍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문(城門)밖인 수남리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으나, 현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군소재지에서 진주 방향으로 20리 정도 떨어진 상리면 오산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네살 때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 건천리 모량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출생지는 고성군내에서도 후자가 설득력이 있다.

 그의 부친 박준필은 수리조합의 토목기사로 재직하였다고 각종 연구나 문헌 등에서 전해지나, 일제는 1908년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고 1917년 7월 제령 제2호 '조선수리조합령' 을 발표하였고, 이를 위해 일제는 자국민 1만여명을 조선에 이주시킨 점 등으로 볼 때 목월이 탄생한 시점과 조선인의 지위로서는 토목기사의 위치에서 재직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당시 일제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도로개설과 농토확장에 혈안이었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목월의 부는 이러한 토목공사의 토목기사 보조원이나 잡부로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경남 고성에서 생활한 것도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탓으로 목월의 출생 배경에 대하여는 의문점이 남지만 후손들은 함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목월 자신도 그의 자작시 해설집인 <보라빛 소묘.신흥출판사.1958. 254쪽>에서 이렇게 술회하고 있듯이 경남 고성에서 출생한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고성(慶南 固城). 세계 1차대전이 끝날 무렵, 아버님이 그곳 고을에 사시게 되었다. 3.1운동이 일어날 무렵 이미 경주로 이사 온 후다. 서라벌의 옛 도읍인 경주에서 네살 때부터 열두 살까지 그리고 스물에서 스물 둘까지, 또한 스물여섯에서 여덟까지 경주에서 살았다." 고 적고 있다.

 여기서 출생지와 더불어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목월의 출생년월일을 1916.1.6으로 백과사전이나 문예지 등에서 표기하고 있으나 그의 주민등록표상의 주민등록번호가 150106-1xxxxxx로 표기되고 있고, 자신 또한 3.1운동이 일어날 무렵인 네살 때부터 경주에서 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주민등록표상 나이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목월이 네살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점이 일치하기에 1915.1.6 경남 고성에서 출생한 것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무렵 경남 고성의 향토시인 김수부와 그의 중학동창인 정연주는 목월이 자신의 고향에서 출생했다는 구전은 있으나 증명할 길이 없어 전국의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며 경주시를 오가게 되었다. 전국의 꽤 이름난 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도 없던 목월의 책<보라빛 소묘>를 그곳 고성여자중학교 도서관에서 찾았다.

 그의 책에서 목월이 자신의 출생지는 '경남 고성' 이다고 술회한 대목에서 그 학교의 국어선생과 이들은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1997년 77세의 일기로 목월의 부인이 세상을 떠날 즈음인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목월의 출생지가 '경남 고성' 이다 는 것을 확인한 후 재차 경기도 성남의 분당에 거주하는 목월의 장남 동규에게서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본적(one's place)을 '호적이 있는 장소' 로 지칭하는 것으로, 이러한 호적제도는 1960.1.1 부터 약 40년간 시행되다가 2008년 폐지되어 이제는 '등록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즉 본적을 어디로 하든 출생지는 자연인으로서 '실제 출생지'를 이기하게끔 호적제도는 정하고 있었다. 고향(one's home)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또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을 일컫는다. 출생지 경남 고성이 목월의 시풍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목월은 자신의 출생지가 '경남 고성' 임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출생지는 '자연인, 즉 사람이 태어난 곳' 을 의미한다. 경주 황성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졌듯이 고성의 남산공원에도 '나그네' 란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문학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고향은 경남 고성이 될 수도 있고 경주시가 될 수도 있는 것으로,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그리운 것이 고향이기에 어디를 택하든 목월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도,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도 고향이란 범주에 속한다. 또한 누구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정이 든 곳이 고향이다. 그러나 출생지 '경남 고성' 만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게 사실이므로 이를 바로 잡는다. 이러한 나머지 목월은 '경남 고성(固城)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慶州)에서 성장' 한 것으로 일컬어져야 맞다. 그렇지만 목월이 사후에는 출생지 고성도 성장한  경주도 아닌 경기도 용인에 잠들고 있다.

2. 향토색이 짙은 목월의 시

 목월에 대한 논의는 정지용이 1940년 <문장>지에 그의 시를 추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문장.정지용.1940년). 정지용은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 날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구성조(朔州龜成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만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중략-
 요적수사(謠的修辭)를 다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 시가 비로써 조선시다." 고 밝히고 있다. 목월의 시가 요적수사가 다분히 정리되면서 한국의 전통시를 이룬다는 정지용은 향토색이 짙은 색채를 발견했을 것이다.

 목월은 그의 수필집에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남산 아래로, 동해로 빠지는 길로, 양산 쪽으로 돌아다녔다. 그러기에 돌과 나무 등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자연과 친해 초기 작품은 자연을 노래한 것이 태반이다." 고 회고했듯이 제1기인 초기의 작품들은 향토색이 짙다.

 그의 시가 대체적으로 3기로 나누어짐에, 제1기는 정형의 율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효과와  토속적인 소재가 특징으로 민요적 가락에 향토색 짙은 서정을, 제2기는 운율의 정형을 벗어난 생활 속의 자아를 탐구한 가정적인 시가, 제3기는 문명을 비판하면서 토속적인 방언의 묘미를 살리고 신과 함께 하려는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추구했다고 본다. 목월은 민족 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향토적인 상징을 통해 고향의 전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전문

 아마도 <나그네>의 소재는 경북 월성군 서면 건천리인 목월이 성장한 곳일 것이다. 건천초등학교와 모량 사이의 '금척' 이라는 형산강 발원지이기도 한 당시의 그곳 강나루로 보인다. 목월이 어릴 적 큰댁에 다녀가는 과객(過客)을 회상하며 시작(詩作)했다는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노래하는 그 고향은 현실적인 세계인 고향이 아니라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 시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과 우리의 언어로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환기시키면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시에서 툭툭 불거지는 '나그네' 가 강나루 건너 밀밭과 술익은 강마을, 남도 삼백리로 형상화되기에 목월 스스로 밝혔듯이 '향토적이며, 한국적인 정서가 어린 풍경' 이 아닐 수 없다. '술 익은 마을' 의 공간은 그 시대에 걸맞지 않게 여유가 넘치면서도 안온함이 환상적으로 묻어 나온다. 또한 '남도 삼백리' 는 현실적인 거리가 아니라 감정의 거리를 나타낸다. 또한 정한모는 "향토적이면서 향토적인 현실의 풍경이 아니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 있는 상징적인 실재로서의 한국적인 자연인 것이다.

 이 자연 속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역시 시간을 초월하여 살아 있는 상징적인 과객(過客)인 것이다." 고 하고 있다(그의 책.현대시론.1990.보성출판사.314쪽).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자란 곳인 고향을 가지고 있다. 그 고향은 어머니의 젖무덤 같이 그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고향은 어느 시인에게서나 시적 자아 속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고향은 고도의 산업화 속에서도 잃어버린 정체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목월의 고향은 현실을 뛰어넘는 유토피아(Utopia)의 세계로 그려지기에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것을 초월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건천(乾川)은 내 고향

역에서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든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의 구름

그 산의 적시는 구름 그림자.

 
<산>전문

 위의 시에서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안온함과 세월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목월의 시에서 '아버지' 라는 시어는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인데도 1956년에 타계한 아버지와 폐병으로 먼저  간 아우와의 추억이 묻어난다.

 목월의 아우는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너무 가난한 탓에 발병한 폐병이란 지병으로 아들인 동규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마흔이 넘은 나이로 목월의 어머니와 고향 건천에서 살다가 세상을 하직했다(박동규.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1999.모아드림.116쪽).

"관이 내려졌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하략- <화관>부분" 에서 사랑하는 아우의 죽음을 기리는 이 시는 신께의 용서와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다.

 목월은 이승과 저승의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슬픔을 더하면서도, 오랫만에 찾은 고향 산천에서 그의 혈육인 아버지와 아우 더 나아가 조상들의 산소가 있기에 친숙하고어머니의 자궁 같은 포근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버지가 기른 감나무, 채마밭 그리고 친구와 다정다감한 이웃이 있었기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친근함이 있는 고향이었다.

"간혹 낯익은 얼굴은/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의 연에서는 어쩌면 패망한 고려의 도읍지 송악을 오랫만에 찾고는 느낀 감정을 읊은 고려말 충신 길재의 시조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네." 를 연상하게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걸은 자연의 한 순환 속에 온데간데 없지만, 이제는 고향 산천도 의구한 것만은 아니다. 즉 1960년대에 불어닥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개발독재로 우리들의  고향의 언저리는 옛 모습과 다르게 몰라보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더욱더 지피게 한다. 이 속에서 목월 자신이 향토적 상징을 통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연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고향을 동경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