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손자(孫子) 구변편(九變篇)에 이런 말이 있다. 장수가 전쟁을 수행하는 마당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임금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이며 이 원칙을 이유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손자였고 또 양저(穰苴)였다.
양저는 손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손자와 함께 병법으로 유명한 학자로 알려졌다.
우리는 이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참다운 대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기 사마양저열전(司 馬穰苴列傳)에 보면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나라 제경공(齊景公) 임금때 진(晋) 나라가 아견을 치고 연(燕) 나라가 하상(河上)을 침략해 왔다. 제나라 군사는 역부족으로 번번이 패하기만 했다.
임금은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정승 안영(晏嬰)이 장군으로 양저(穰苴)를 천거했다. 임금 경공께서는 양저를 불러 그 의견을 들어보고 대장군에 임명했다. 양저는 임금에게 청하였다. 신은 오지에서 출생한 미천한 몸이라 모든 장병들이 아직 미더운 생각을 갖지 못할 것이니 임금께서 가장 아끼고 신임하는 사람으로 장군에 임명하여 신에게 보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임금은 장가(莊賈)라는 충신을 장군으로 허락했다. 장군은 감독관과 같은 지위이므로 명목상으로는 대장군과 같은 지위라고 볼 수 있다. 양저는 장가와 이튿날 정오에 군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단단히 해 두고 낮이 되기 전에 미리 군문에 가서 장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장가는 시간을 어기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양저는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하여 약속시간보다 늦었습니까? 장가는 임금의 총애를 믿고 평소에도 교만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그가 양저를 대단하게 알 리 만무했다. 양저는 목소리를 높여 지금 적국이 깊이 쳐들어와 온 나라가 소동을 일으키고 군족들이 변방에서 비바람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임금께서는 잠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진지도 달게 잡수시지 못한 형편이오. 온 백성들의 생명이 당신에게 메어 있는데 소별잔치가 다 무엇인가 꾸짖은 다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 약속을 어기고 늦게 온 사람은 어떻게 다스린다 했는가? 대답하기를 목을 베게 되어 있습니다. 장가는 그제야 겁이 나서 사람을 시켜 임금에게 구원을 청하게 하는 한편, 양저에게 용서를 빌었다.
임금의 특사가 오기전에 장가의 목은 이미 떨어져 三군 앞에 내 보여졌다.  三군은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장가의 목이 단지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었다는 이유로 목이 떨어져 나갔으니 모든 군졸들이 떨 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뒤늦게 임금의 특사가 수레를 몰고 군중으로 뛰어들었다. 장가에게 내리는 특사령을 가지고 들어 온 것이다. 양저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장수가 군인을 통솔하고 있을 때에는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將在軍 君令有所不受) 그리고는 군자 감정을 불러 물었다.
군중에는 달리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지금 사신이 수레를 달렸으니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답하기를 목을 베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그러나 임금의 사신을 죽일 수는 없다. 대신 말을 몬 사람과 왼쪽에 있는 말의 목을 베어라. 이 소식이 적군의 밀정에 의해 알려지게 되자 적군은 싸우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 양저는 그 뒤를 추격하여 잃었던 땅을 다시 평정하고 돌아왔다.
임금께서는 양저가 적군을 물리치고 승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궁녀들을 모아놓고 질탕한 음악으로 온 조정이 방탕한 노래 소리에 정신이 혼미하고 있을 때 양저가 승전고를 울리고 돌아왔다. 이때 궁녀 중에 두 여자가 음탕한 노래와 난잡한 춤으로 임금의 마음을 혼란 속으로 유도 하고 있거늘.
양저는 두 여자를 죽이려 하였다. 임금이 놀라 사람을 시켜 용서를 청하였다. 과인은 그 두 여자가 아니면 밥을 달게 먹을 수 없으니 죽이지 마시오. 그러니 양저는 신은 이미 명을 받아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군을 통솔할 때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은 바가 있습니다(臣旣已受命爲將 將在軍 君命有所不受) 하고 두 여인의 목을 벤 다음 여자로 하여 예절교육과 국가를 위한 가무를 가리켜 임금을 모시도록 하였다. 임금도 마음이 흐뭇하여 정무에 열중하게 되었다.
양저는 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이제는 폐하의 신하들이 임금의 명령에 물불이라도 뛰어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춘추전국시대 6개국 제나라가 오랜 세월동안 태평가를 부르며 국가가 유지되었다고 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