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입으로는 꿀처럼 달콤한 말을 하면서 마음속에는 무서운 칼날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뒤흔들고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임금 밑에 사사건건 대의명분을 들고 나오던 고지식하기만한 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된 사화(士禍) 같은 것도 다 이런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간신들의 음모에 의해 일어났던 것이다.
이 구밀복금이란 말은 중국 역대의 간신 중에서도 이름 높던 이임보(李林甫)를 가리켜 한 말이다.
이임보는 당나라 현종(玄宗)때 현종황제가 사랑하고 있는 후궁에게 잘 보임으로써 출세를 하기 시작 개원(開元) 22년<734년>에 부총리격인 중서성문화(中書省門下)가 되고 2년 후에 재상인 중서령(中書令)이 된 다음 천보(天寶) 11년<752) 그가 병으로 죽을 때 까지 19년 동안 항상 현종 측근에 있으면서 인사권을 한 손에 쥐고 나라의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했다. 그 결과 흥왕했던 당나라를 한 때 멸망의 위기로까지 몰고갔던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질투의 덩어리 같은 그런 인간이었다. 혹시나 자기 자리를 그 사람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혹시 그로 인해 자기의 하는 일이 방해나 받지 않을까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이리하여 기회만 있으면 교묘한 수법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중앙에서 지방으로 멀리 몰아내곤 했다. 그런데도 자신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가장 충성과 의리에 불타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천자에게 그를 추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놓고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넘어뜨리곤 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가 재상으로 있던 천보원년 현종황제가 문득 생각난 듯이 이임보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정지는((嚴挺之)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을 다시 썼으면 하는데...
엄정지는 강직한 인물로서 이임보의 전임자였던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던 장구령(張九齡)에게 발탁되어 요직에 있었으나 이임보가 집권한 뒤로 그의 시기를 받아 지방으로 쫓겨났었고 이때는 강군 산서성(絳郡 山西省) 태수로 있었다. 엄정지는 물론 그것이 이임보의 탓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임보는 엄정지가 중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 서울에 있는 엄정지의 아우 손지(損之)를 불러들여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당신 형님을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한번 폐하를 배알 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어떠하겠오. 폐하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신병을 치료할 겸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소문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
엄송지가 이임보의 회의에 감사하고 그런 내막을 그의 형인 엄정지에게 연락했던 것은 물론이다. 엄정지는 즉시 이임보가 시키는데로 휴양차 서울로 돌아갔으면 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것을 받아 든 이임보는 현종에게 말했다.
앞서 폐하께서 물으신 바 있는  엄정지에게서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래도 나이도 들고 몸도 약하고 해서 직책을 수행하기가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서울로 불러 한가한 직책을 맡기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현종임금은 그 술수의 내용도 모르고 ‘그래 안됐지만 하는 수 없지’ 하였다.
엄정지는 이임보의 술책에 넘어가 태수의 직책마저 빼앗기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뒤늦게 이임보의 농간인줄을 깨달은 엄정지는 쌓이고 쌓인 울분이 치밀어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당나라 중흥의 임금으로 이름이 높던 현종이 사치와 오락에 빠져 정치를 돌볼 수 없게 된것도 이임보의 이같은 음험한 술책 때문인 걸로 평하고 있다.
우리말에 나무에 오르라 해놓고 흔든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문자로 권상요목(勸上搖木)이라고 한다. 다 비슷한 성질의 말이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이임보를 평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어진 사람을 미워하고 재주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밀어내고 내리눌렀다. 성질이 음험해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有蜜服有劍) 라고 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楊貴妃)의 오라비 뻘 되는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그도 이임보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왔기 때문에 실권을 쥐는 즉시 그의 지난날의 죄악을 하나하나 들추어 현종황제에게 보여 주었다. 그래서 화가난 현종의 의명에 의해 그의 생전의 모든 벼슬을 박탈하여 서민으로 내려앉히는 한편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다시 평민들이 쓰는 허술한 널 속에 넣어 묻게 했다.
안록산도 이임보가 있는 동안은 그를 무서워해서 난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가 그가 죽은 3년 뒤에야 난을 일으켰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