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어 제 위엄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배경을 믿고 세도를 부리는 사람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위나라 출신인 강을(江乙)이란 사람은 말을 잘하는 변사로서 초선왕(楚宣王) 밑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초나라에는 삼려(三閭)로 불리는 세 집안이 세도의 실권을 쥐고 있어 다른 사람은 그 부당성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때는 소씨집 우두머리인 소해훌이 정치권과 군권을 다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강을(江乙)은 소해를 넘어뜨리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그를 헐뜯었다. 하루는 초선왕이 여러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물었다.
초나라 북쪽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소해훌을 퍽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소해울이 두려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강을이 일어나 대답했다. 호랑이는 모든 짐승을 찾아 잡아먹습니다. 한번은 여우를 붙들었는데 여우가 호랑이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지 못하리라. 옥황상제께서는 나를 백수(百獸)의 어른으로 만들었다. 만일 그대가 나를 잡아먹으면 이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만일 내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내가 그대를 위해 앞장서서 갈터이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오며 보라.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놈이 있는가를.
그러자 호랑이는 과연 그렇겠다 싶어 여우를 앞세우고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짐승들은 보기가 무섭게 달아났습니다. 호랑이는 자기가 무서워 달아나는 줄을 모르고 정말 여우가 무서워서 달아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5천리 되는 국토와 완전무장한 백 만명의 군대를 소해훌 한 사람에게 완전히 맡겨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다른 나라들이 소해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옵고 사실은 임금님의 완전 무장한 군대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짐승들이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재미있고 절묘한 비유였다. 소해훌은 임금님을 등에 업고 임금 이상의 위세를 부리는 여우 같이 약삭빠르고 간특한 놈이 되고 초선왕은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자각하지 못한 체 소해훌이 훌륭해서 제후들이 초나라를 두려워하는 줄로 알고 있는 어리석은 호랑이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상과 같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부조리가 너무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에 대한여론이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의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민주주의를 유연하게 실천하고 있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아고라의 토론장이나 고임금 문제와 관련해 국민 여론을 도출해 해법을 찾은 스위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국회의원은 정책적 의사결정의 대변적 선출직으로서의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국회 의원직이 나의 권력이 아닌 잠시 위임 받은 유권자의 권력이라는 점을 잘 새겨서 연구하고 노력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