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말이다. 이 글은 한나라 고조(漢高祖)가 반란을 일으킨 위왕(魏王)의 장수 백직(柏直)을 가리켜 한 말인데 한고조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흔히 하는 말을 한 것이 기록에 남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얕보고 하는 말 치고는 어딘가 품위가 있고 애교와 문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중기 이후 헌종(憲宗)때 방랑의 김삿갓(金笠)에 관한 이야기 중에 이렇게 전해 오는 말이 있다.
어느 더운 여름철 청주(淸州) 고을을 지나노라니 젊은 유학자(儒學者)들이 개를 한 마리 잡아 놓고 술을 주거나 받거니 하며 시(詩)를 한수식 지어 장원이 누구니 차상이 누구니 하고 마구 떠들어 대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김삿갓이 그냥 지나쳐 갈 리 없다. 시(詩)나 한수 지어 볼까하여 말석에 앉아 한 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인지 본체도 않고 있다. 김삿갓은 약간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 구상유취(口尙乳臭)로군 하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러자 그 젊은이들은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했지. 구상유취라고 하는 것 같더군. 고연놈 같으니. 이리하여 김삿갓은 뒤쫓아 온 하인들에게 끌려 다시 학자(선비)들 앞으로 갔다. 양반들이 글을 읊고 있는데 구상유취라니 그러면서 엎어놓고 매를 칠 기세를 보였다. 김삿갓은 태연히 내가 뭐 잘못했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뭐라고 무얼 잘못 말했냐구. 어른들을 보고 입에서 젖내가 나다니 그런 불경한 말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김삿갓이 답하기를 그건 큰 오해십니다. 내가 말한 구상유치는 입에 젖내가 난다는 구상유취가 아니라 개 초상에 선비가 모였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였습니다.
한문(漢文)은 묘미(妙美)하고 뜻이 깊고 넓은 의미가 있다는 뜻일까. 그 자리에 모인 학자와 선비들은 그만 무릎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우리가 선비의 학문을 몰라보았소. 하고 이리와서 같이 술이나 들며 시라도 한수 나눕시다. 하고 오히려 사과를 한 끝에 술을 권했다는 것이다.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으로 우리나라 세도가(勢道家)인 안동 김씨다. 1807년에 출생하여 1863년에 57세로 별세하였다. 그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평안도 선천고을 부사로(군수) 있을 때 홍경래(洪景來)의 란(亂)이 일어나 역부족(力不足)으로 항복(降伏) 하였다하여 연루(連累)되어 그 집이 그만 폐족(廢族)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노복(奴僕) 김성수는 관청몰래 어린 김삿갓을 데리고 그의 고향인 항해도 곡산 땅으로 도망가 거기서 서당에 공부를 시켰다. 24세에 가출할 때 죄인의 손자라 하여 삿갓을 쓰고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며 5백5십여 수의 한시를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