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갑 고성미래신문지면평가위원

장군아! 에비다. 좋아하는 음식은 충분히 챙겼더냐? 네 어미가 사놓은 내복은 빠뜨렸구나. 간밤에 귀뚜라미가 머리맡에서 울어대고 찬바람이 엄습해 담요를 당겼다. 잠시 어미에비의 사랑에 머물다 바람같이 머~언 바다로 날려 보낸 네놈 생각에 밤새 에비는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했다. 요즘에는 에비가 늙어 가는지 네놈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에비랑 소주잔 기울이며 당차게 미래를 토로하던 모습이 훤하고, 자꾸만 끝없는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에서 또다시 어미에비를 그리워할 네 모습에, 나도 가방 하나 걸치고 통영 여객선 갑판 위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배를 타고 끝닿는 곳에 갔다가, 거기에 닿는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건너가고, 거기서 또 다른 섬으로 가고, 이 바다 어딘가 흘러가며 외로움에 젖어 낮밤 없이 가고 있을 고독한 네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한창 사랑하고 돌아다닐 나이인데, 지금쯤 그 어느 망망대해에 던져버린 독한 네의 어미에비나마 생각하고 있을 네 생각에 에비의 가슴인들 어이 소주잔에 적시는구나. 어느 곳에 흘러가고 있느냐? 혹여, 이 밤 파도치는 네의 그리움은 달려와서 홀로 정원(庭園)의 귀뚜라미로 울고 있느냐? 아들아! 우리 정원의 귀뚜라미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염불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러나 우리 집 귀뚜라미는 괜스레 공염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미에비의 애간장 속에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솔한 꿈을 안고 고고의 울음소리를 토하며 왔지만, 돈도·명예도·권세도 새털 깃만큼도 없는 무능한 에비를 만난 아들아! 나의 분신인 네가 모진 풍상의 한바다를 웃음으로 받아들이며 만행하는 비구처럼 흰 구름머리에 이고, 의연한 자세로 항해(航海) 하는 그 쓸쓸하고 고단한 삶을 의미 있게 승화시킬 수 있는 값진 여로의 이정표를 찾아 날 새처럼 어미에비 품으로 오너라.
아들아! 뜻도 비전도 인적 네트워크도, 그렇다고 굽실거림조차도 없는 독한 에비를 만난 죄로, 사나운 폭풍우와 싸우고 젊은 영혼을 날리는 외로움에 바다와 속삭이며 울기도 하겠지만, 바다를 지배했던 선현들의 후예답게 잘난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기류의 표현이나 이해득실의 기만에 찬 어설픈 우수 따위는 찾지 마라. 고독을 배우고 거기에서 많은 것들을 터득해 내야만 한다. ?
아들아! 폭풍 으르렁거리는 새까만 파도 속에 아득한 바다를 달려가는 외로움은 도저히 어떻게 계산해낼 수 없을 만큼 큰 성장을 분명히 기약해 줄 것이 다. 푸른 피의 고생은 지금 네가 건너는 바다 저편의 그곳을 보다 정확하게 짚어주는 나침판·금강경일 수도 있다. 어느새 네가 중늙은이 에비를 허무로부터 일깨워 생명력을 불어주는구나. 고맙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다로 띄운 이 에비 원망 많이 해라. 아들아! 오늘 네가 떠나는 외로운 바다는 보다 근원적(根源的)인 자리로 반듯이 돌아오고자 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바다가 흐르듯 인간만사가 흐르고 세월이 흘러간다. 속절없이 흘러가서는 저편의 한적한 갯가에서 에비라는 이름으로 늘 고요하다. 그러나 바다는 늘 고요하다가 어느 때면 폭풍을, 근자에는 세월호를 몰아쳤다. 에비를 안절부절못하게도 하였고 더러는 차마 서럽게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부자(父子)가 건너야 할 바다가 아닐까? 아들아! 그 누구의 삶인들 쓸쓸하고 고단하지 않겠는가.?
아들아! 인간이 가식을 벗어던지면 너무도 외로운 사람인 것을. 그런데 작금의 현실을 봐라! 껍데기를 걸친 저~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온통 진흙탕으로 살벌하게 만들고 있잖나. 연금개혁이나 세월호 특별법이란 것도 밀고 당기는 싸움을 제대로 하고 나서 타결점을 찾아야 진정한 희망·안정·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
그런데 협상 타결이 종편·보수언론의 일방적 여론으로 이루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재 연소되게 마련이다. 재 연소될 때는 연기가 많이 나고 이산화탄소 냄새도 고약하게 된다. 협상 타결이나 화해라는 것은 완전 연소 다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참다운 싸움이 없는 타결은 참다운 화해가 아니다. 그러니 네는 네 외로움과의 화해를 위하여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
아들아! 근검절약정신이 투철한 너에게 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할 줄 모르면 허황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허황해지면 알뜰하지 못하고 한탕을 해서 떵떵거리고 살아 보려는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한평생 바람을 잡으려 다니는 짓을 하게 된다. 에비는 나랏돈을 수천억 벌어들여 뻔쩍 거리며 공갈치는 돈 많은 사람보다 말일 날 은행 수납창구에 줄을 서 있는 서민대중들을 좋아한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진실 되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각종 고지서와 급료 통장을 찍어 보려고 그들과 함께 줄을 서면 에비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만 같았으면 국민적 신뢰의 침몰, 세월호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어느 안하무인은 12년 지방 수령 때 무슨 사령부가 온다는 등 온갖 혹세무민의 사술을 부려, 수백억의 혈세 탕진과 갖가지 이벤트를 벌여 지자체를 빚더미에 앉혀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제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온갖 안전장치를 해놓은 듯 군민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뒤뜰은 골프장이요 앞뜰은 요트장이라, 천하의 명소 저~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자기의 입김·의사를 언제든지 표방할 수 있는 현 수령 주변에 사는 후안무치한 인간도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