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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詩碑) 유감
정해룡 시인의 칼럼 '돈자모티'(돌아 앉은 모퉁이)
2011년 09월 23일 (금) 09:35:46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하느님이 세상에 사람을 내일(내놓을)적에는 하느님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귀애하는 사람일수록 그에게 혹독한 시련과 세상의 온갖 불행을 주어 그로 하여금 시인의 길로 인도한다고 했던가.

  시인은 뼈를 깎는 절대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지독한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그러한 고통을 통해서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내듯이, 더러운 오물 속에서 자라는 연이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내듯이 천상의 음성으로 주옥같은 시를 토해내기에 시인을 가리켜 흔히 지상의 지고지순한 영혼이라고 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인이 세상 살아가면서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잊고자 술을 통해 저지른 이런저런 인간적인 실수나 불미한 점에 대해서도 어여삐 여기어 ‘시인이 한 짓은 그 어떤 것이라도 무죄다.’라는 불문율이 내려오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글이 다르다는 것도 아마 이런 까닭일 것이다.

 고성이 낳은 우리나라 현대 서정시조의 극세공자(極細工者)인 서벌(徐伐) 시인도 그의 주사(酒邪) 때문에 향리의 자칭 글 쓴다는 후배들마저도 서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입방아를 찧어대고 있으니 더러는 그들이 과연 문학인인지 의심이 간다.

 이것이 어디 서벌만의 문제이겠는가.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는 여성문제로 난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도, 랭보나 보들레르도 다 그랬다. ‘고성가도’를 쓴 백석도 그렇고 ‘나그네’의 시인 목월도 그렇다. 아마 이 세상의 ‘좋은 시인’이라고 하는 시인들치고 술과 여자에 자유로운 시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그러함에도 그가 쓴 시를 사랑하고 좋아하여 시비를 세우는 까닭은 기실은 그의 시가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영혼을 맑고 밝고 아름답게 정화하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통영에는 시비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청마를 비롯하여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와 박경리, 김용익, 김성우 등 우리나라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영의 충렬사 맞은편 쉼터에는 평안북도 정주 태생으로 통영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을 것 같은 백석의 ‘통영’이라는 시가 시비로 세워져 있다.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시절, 그의 절친한 친구 허준의 혼인기념축하모임에서 만난 통영여자 ‘난-본명은 박경련’을 만나 백석은 흡사 전기에 감전이라도 먹은 듯 첫 눈에 반한다. 사랑에 눈이 멀면 용감해진다고 했듯이 백석은 친구 허준의 처갓집 통영 신행길에 난을 만나려 따라 나선다. 그 후 세 번이나 왔다. 두 번째 왔을 때 사랑하는 난을 만날 수 없어 난의 흔적이라도 찾을까 싶어서 난이 살던 명정골 충렬사 입구 층층돌계단에 앉아 쓴 시가 ‘통영’이다. 시가 아주 절창이다.

 통영 미륵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천하절경이다. 그곳 신선대 서면 통영항과 남해바다는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해방 후 청마를 찾아서 통영에 온 정지용 일행을 맞은 청마는 고향의 풍경을 일목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더니 정지용이 재탄 삼탄 감탄했다고 하는 신선대에다 충북 옥천의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통영5‘라는 문장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 욕지도에 가면 이곳 출신인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 문장비가 욕지도를 빛내고 있다. 김성우는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다. 프랑스의 공로훈장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의 문장은 유려함과 유장미가 물 흐르듯 하되 결코 넘치지 않는 미문 일색이다. 아무리 뛰어난 문장이라도 감흥과 감동이 없으면 죽은 문장인데 그의 글에는 도도한 감동과 감흥이 한 강물을 이룬다. 욕지도의 풍광이 제일로 아름다운 ‘새천년기념공원’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문장비를 세워 그에게 헌정했다.

 이처럼 시비나 문장비는 당대 최고의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시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세워지는 것이고 비록 연고가 없다할지라도 그 지역을 노래한 시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시비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고성 남산에 세워진 시비 군락을 볼 때마다 새삼스레 시비가 무엇인지, 시비를 왜 세워야하는지를 자문케 한다. 마치 남이 장에 가니까 따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도 아니면 신장개업하는 점포에 구색 맞추듯이 물건을 한꺼번에 진열하듯 세운 시비는 시비 본래의 가치를 무색케 한다.

 시인 한 분 한 분마다 세상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감동과 감흥이 있어야 하는, 소위 말해서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이 있어야함에도 몇을 제외하고는 고향출신이라 하여 시혜를 베풀듯이 시비를 세우는 그런 애향심은 내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촌스럽다는 생각뿐이다. 고성이 촌이라 하여 시비마저 촌티를 내어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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