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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칼라
정해룡 시인의 칼럼 '돈자모티'(돌아 앉은 모퉁이)
2011년 09월 02일 (금) 11:06:15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많아지면 감정도 무뎌진다던데 얼마만이던가, 영상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이!

 전쟁에 시달려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가난한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라는 지역 주민들의 의사이자 선생이었고 음악을 가르치는 지휘자이자 멘토이자 카톨릭 성직자였던 고 이태석 신부.
 카톨릭 성직자의 상징인 ‘로만 칼라’ 대신 허름한 옷차림으로 대장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거룩하고 고귀한 인류애를 발휘하던 죽기 전의 그의 모습은 성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훌륭한 신부가 어디 이태석 신부 한 사람뿐이겠는가.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오늘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서 참 사제의 길로 가는 신부와 수사와 수녀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이러한 성직자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부들이 착용하는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수단(Soutane)과 함께 천주교 사제의 상징이다. 성직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평복인 수단의 목 부분에 두르는 흰색의 로만 칼라는 '독신의 정결'을 상징한다. 1995년 발표된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는 "모든 사목활동 때와 공적 회합 및 행사 때는 성직자 복장(수단 또는 로만 칼라)을 착용해야 한다."(15조)고 규정하고 있다. 수단을 입는 경우가 아니라면 양복 정장에 로만 칼라를 하는 것이 정식이며 여름엔 점잖은 모양의 노타이를 할 수 있다는 게 한국 주교회의의 결정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에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곳마다에는 이 로만 칼라를 한 신부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그들은 나서야 할 곳, 나서지 말아야 할 곳을 가리지 않고 분규의 현장마다 해결사로서, 아니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상당히 곤혹스럽고 당혹스럽다.

 곤혹스럽고 당혹스럽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 때문이다. 1987년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게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강제 연행 돼 물고문으로 죽었다. 당시 경찰발표로는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유명한 발표가 결국 조작에 의한 은폐였다는 것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에 의해 밝혀졌고 그 여파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오늘날의 민주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 그 공로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선상이었던 전두환 정권 아래서 감히 아무나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온 국민의 지지와 성원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런 국민의 인식에 힘입어 고무되었는지 그 후 그들의 왕성한 활동은 차츰 세력화되고 세속화되어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적 약자나 억울하게 핍박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고 자연생태계를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으로 파괴를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그런 범주를 벗어난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필자가 생각나는 것만 해도 전북 부안 방폐장유치반대, 김현희KAL기폭파사건재심,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국가보안법폐지, 미국소고기수입반대촛불집회, 미군장갑차희생여중생사건, 삼성비자금관련기자회견, 한미FTA반대, 부산영도한진중공업희망버스, 제주도해군기지반대, 정진석추기경에 대한 항명 등등 약방의 감초처럼 우리사회의 이념적 갈등이나 노사분규가 있는 현장이면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 그들이었다.

 특히 ‘정의구현사제단’이 관여해서는 안 될 분야에까지 주제넘게 참가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2004년 필자가 통영문인협회 회장이었을 때 청마가 생전에 약 5천통의 편지를 부친 통영시내 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코자 했다. 잘 추진되어 갈 때 청마가 친일을 했다며 누군가 투서질하여 중단되었는데 좌파이념의 ‘탈레반’들이 전면에 나서서 설치던 노무현 정권 시절 일이다.‘전교조경남지부’, ‘천주교정의구현마산교구사제단’ 등이 시인 청마 유치환에게 없는 친일 혐의를 덧씌우는 일에 앞장선 것이다. 심지어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청마를 친일문학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온갖 구실을 만들었으나 필자가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표 시 그들의 의도를 결국 무산시켰다. 만약 청마에게 친일혐의가 있었다면 친일에 대해서 칼자루를 쥐었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청마를 친일로 덧씌웠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처럼 문학의 분야를 마치 환경이나 노동문제처럼 흑백으로 편 가르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제인식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아프다. 소위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씌우자는 것인데 이게 성직자로서 할 일이던가. 문학의 분야는 문학인들이 더 잘 안다. 우리나라 대다수 문학의 원로들은 ‘청마가 친일이라면 우리나라 문인들 중 친일 아닌 문인이 없다.’고 한 말을 ‘정의구현사제단’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유명한 구절을 상기해보면 우리사회가 과거처럼 군사독재시절이었다면 또 모를까 민주화가 된 오늘 이 시대에서는 종교인의 목소리는 가급적 종교본연에 충실하는 것이 좋다. 종교가 사회 갈등을 치유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고 증폭시켜 편을 가르고 적대적이라면 소금이 짠 맛을 잃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정의구현사제단’이 부르짖는 ‘정의’가 무엇인지,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내가 흘렸던 눈물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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