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하는 작가에 있어 시간은 참으로 피를 말리게 하는 징벌이기도 하다. 톨스토이와 인도의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월든 호숫가의 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오죽했으면 「창작에 있어서 원수는 시간」이라고까지 했을까.

 통영이 낳은 세계적 문학가인 김용익은 1956년 단편소설「꽃신(The Wedding Shoes)」을 미국에서 발표하여 일약 영어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로 주목받아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사실을 아는 이가 참 드물다.

미국인이 자국의 언어인 영어로 글쓰기가 어렵다는 미국에서, 한국인이 그것도 영어로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을 잘 표현하여 심지어는 ‘펜의 마술사’, ‘마술의 펜’이란 칭호를 얻었던 김용익도 1983년 동아일보사에서 자신의 책을 출판한 자리에 “작품 하나하나를 다시 보니 아직도 한 10년을 들고 고쳤으면 싶다”고 한 것만 보아도 작가에게 시간이란 얼마나 형극과도 같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세기의 시적 성서’라고 평가를 받는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도 그의 시집 ‘악의 꽃’에서 ‘원수’라는 시를 통해 “원수는 곧 우리의 생명을 좀 먹는 시간이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시간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인데 혹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물 허비하듯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 특히「5분」이란 시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5분이란 시간이 얼마만큼의 기다림인지는 권투경기 한 라운드가 3분이고 유도 한 경기가 5분이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담배 한 대 피우는데도 5분이 족히 걸릴 것이고 정다운 사람과 마주하면서 커피나 녹차 한 잔 마시는 데에도 5분은 더 흘러 보내게 될 것이다.

 이처럼 5분이란 시간은 우리네 인생의 긴 행로에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보낸「5분」이란 시간을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무료하다거나 한유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러시아가 낳은 대(大)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쟌차키스를 습관적으로 떠올린다.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작가이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쟌차키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에 버금가는 작가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새파란 젊은 시절인 1849년 오늘날로 치면 반체제인사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장에 서게 된다.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젊은 사회주의자 미하일 페트라쉐프스키의 집에 모였던 급진적 지하 운동단체의 일원으로 그의 죄는 당시에는 금지되었던, 벨린스키가 1847년 고골리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를 읽은 것이 원인이었다. 체포돼 사형장으로 끌려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5분.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일생일대에 남은 이 소중한 5분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3분간은 자신의 고향, 부모형제, 유년과 청년시절을 회상하고 1분은 동료 사형수와 대화를 나누며 나머지 1분간은 자신을 둘러싼 하늘이며 구름이며 나무며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보낸다.

이윽고 사형집형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방아쇠 풀리는 쇳소리가 귓전에 쟁쟁거리는 숨 막히는 일촉즉발의 그 순간, 저 멀리서 백기를 들고 사형집형중지를 외치며 달려오는 차르의 집행 연기 명령을 받아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멀리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

 그는 일생동안 이 사형대에서 겪은 5분간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치열하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하며 살은 사실을 그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흔적을 남긴다.

 또한 니코스 카쟌차키스는 그의 말년에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펜을 들 수 없게 되자 못다 집필한 책을 위해, 길거리에 나와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어 들고 마치 돈은 구걸이나 하듯이, “여러분! 여러분의 시간 중에서 각자 나에게 5분간만 적선해 주시오! 5분간만!” 그러나 시간을 어찌 타인에게서 동냥하듯이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는 결국 집필을 못다 한 채 이 세상을 뜬다.

 우리는 5분간의 시간이 이처럼 귀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란 것을 평소에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히 잊고 지내 온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무료함이니 한유니 어쩌고저쩌고 거들먹거리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축내고 있을 때마다 문득문득 도스 토예프스키나 니코스 카쟌차키스의 「5분이란 시간」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또 참으로 게을받고(게으르고) 한심한 삼류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