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에 빗대어 이해하는 일은 단지 흥미로운 지적도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인 삶 또는 인간사회를 벌거벗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좀 더 초연한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인간 존재를 이른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곧장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현실에서 극중의 무대로 들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정해진 의상을 입고 정해진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 등장해서는 정해진 각본(사회의 여러 규칙)에 따라 열심히 연기를 한다.

그러다가 연기가 끝나면 무대 뒤로 퇴장한다.

인간의 사회생활도 실은 모두가 이와 유사한 연극이라고 흔히들 가정해 본다.

특정 문호가 그렇게 비유했든 그렇지 않든 이는 인생 이해의 절묘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연극과 연기로 꾸려가는 삶 그것이 인간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지적 노력의 결과가 그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잘 뒷받침 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종교의 교주들과 탁월한 몇몇 철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묘사되어 있는 인간 존재의 참모습을 보면 상호간에 다소 차이가 존재하기는 해도 근본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공통점은 흥미로움을 넘어 그것의 객관성을 매우 크게 시사해 준다.
 

철학 특히 형이상학에서의 인간존재의 탐구 결과가 그런 구실을 한다.

형이상학의 관점이 아니라도 인관 연극론은 유용하지만 형이상학을 배경지식으로 활용할 경우에는 그 유효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철학계 안의 한쪽에서는 형이상학은 관념의 유희일 뿐이라는 비판이 이어져 오지만 그러한 비판에 대한 제반론 역시 강력한 대두가 되어 인간을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 현상적 존재 사회, 정치적 동물로 추락하는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이 꿈을 꾸고 있는 동안 꿈속에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꿈을 깨고 난 뒤에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사실 즉 조금 전에 한 자신의 활동이 꿈속의 활동임을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꿈꾸기 전 현실의 자아는 형이상학에서의 초월적 자아인 셈이고 꿈속에서 활동하던 자아는 일상적인 자아에 해당한다.

꿈속에서의 자아의 활동은 술에 취한 것처럼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몽롱하고 이상한 경우도 허다하다.

꿈속에서 만난 사람이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조금 뒤에 보니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였고 나중에 다시 보니 이웃집 아저씨였다.
 

죄도 없는 낯선 사람을 막 두들겨 팼더니 죽어버리는가 하면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이 갑자기 되살아나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는데 뒤에 보니 그 사람은 자기 삼촌이었다.

꿈의 이러한 내용들이 정신분석학적으로 이러게 해석되든 상관없이 형이상학적에서의 초월적 자아와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일상적 자아의 허망하고 부질없는 삶과 상통한다.

이 점을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상적 자아와 그의 일상적 사회생활은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신의와 악의, 이념과 현실, 탐욕과 절제, 진실과 허위, 질서와 혼란 등 절박하고도 상충하는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초월적 자아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내용도 아주 흔하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나른한 어느 봄날 잠시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한 조각의 뜬 구름과도 같다.
 

그렇다고 단지 더 없다는 뜻만도 아니다.

외면상으로는 제법 선량하고 그럴듯한 사회생활 속에도 사악함, 위선, 모순 같은 것을 깊숙하게 감추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초월적 자아의 시각을 잠시나마 빌려서 보지 않으면 이러한 면은 제대로 포착되기 어렵다.

일상적 자아의 눈은 그 자체가 이미 아집과 독선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런 눈으로써는 대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추시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