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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야’와 ‘소가야문화’의 정체성
정해룡 시인의 칼럼 '돈자모티'(돌아 앉은 모퉁이)
2011년 05월 13일 (금) 18:06:13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우리가 터 잡고 살고 있는 이 땅 고성을 흔히 ‘소가야(小伽倻)’라고 한다. 고성의 각급 학교 교가에는 대부분 이 소가야라는 이름이 가사에 들어있을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대성초등학교나 철성중학교의 교가에도 소가야를 운운하고 있으며 각급 공공기관의 현황에도 어김없이 이 소가야가 등장한다.

우리는 그 이름을 오래전부터 그냥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들어왔고 또 불렀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사용해 왔으나 ‘소가야(小伽倻)’라고 표기를 해놓고 읽어보면 어딘지 어색하면서 무언지모를 심리적으로는 위축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어찌 필자만의 생각이겠는가.

한 고을이나 한 마을 이름에도 〈작고 미세하고 낮고 적다〉는 의미의 이 소(小)라는 글자를 잘 쓰지를 않는다. 하물며 한 나라의 국호를 정함에 있어 스스로를 소국이라고 칭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왕 국가의 이름을 정할라치면 건국신화에서 보듯이 신의 섭리를 받은 웅장하고 미래지향적이거나 아니면 태양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거창한 이름이 제격에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스스로 옹색하고 안으로만 오그라들고 찌그러지는 내향적인 소(小)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인류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일어났다가 뒤안길로 사라졌어도 자기들의 나라 이름 앞에 소(小)를 붙인 예는 퍽 드물다. 굳이 있다고 따진다면 작가 스위프트가 지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정도뿐일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소인’이나 ‘소생’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임금 앞에 신하가 자신을 낮추어 ‘소신’이라고, 조선시대 사대주의에 젖어 중국을 향해 자신들의 나라를 ‘소국’이라고 했다지만 고성을 고성인들이 아무생각 없이 스스로 ‘소가야’라 부르고 ‘소가야’의 후예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이것은 고성인의 자긍심과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소가야문화창달’이란 기치를 내건 ‘소가야문화보존회’란 단체까지 있으니 이 기회에 무엇이 소가야문화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체는 창립역사도 오래되었고 관계하는 분들도 모두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쟁쟁한 인물들이다.
 

소가야문화보존회’란 것은 이 단체의 이름 그대로 소가야시대에 있었던 어떤 문화를 지금 가꾸고 계승하여 보존하자는 것일 터이다. 가령, 보존이라 하면은 고성농요나 고성오광대처럼 옛 선인들이 남긴 놀이나 가무 등 유ㆍ무형의 문화를 발굴하거나 발췌 또는 채록하여 그것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오늘에 되살리는 것을 의미함인데 ‘소가야’ 시대의 어떤 무슨 문화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보존하자는 것인지, 있다면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가서 배우고 싶다. 참으로 궁금해진다.

고성을 언제부터 누가 ‘소가야’ 라고 칭했을까? 고려 충렬왕 때의 명승 보각국사인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서 아라가야(지금의 함안), 고령(古寧)가야(지금의 함녕), 대가야(지금의 고령), 성산가야((지금의 경산), 소가야(지금의 고성) 등으로 기록해 놓았음에서 비롯한다. 그에 반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고성은 본래 고자군(古自郡)인데 고성으로 이름을 고쳐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고 서술해 놓았다.

가야가 기원전후에 건국하여 562년(진흥왕 23년)에 신라 장수 이사부와 사다함의 정벌로 신라에 복속돼 소멸하고「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조」그 신라도 935년 (경순왕)에 나라를 고려에 바치고 귀순한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시기는 대략 1281년 전후다. 가야가 멸망하고부터 720년이란 시차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기록의 정확성에도 의심이 갈만하다. 삼국유사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야사(野史)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정사다.

역사의 평가는 되도록이면 정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더러는 정사가 아닌 야사도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진주 논개다. 논개에 대한 정사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몇 줄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그것이 오늘날 확대재생산 되어 논개가 사실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일연 스님이 가야사를 정리하면서 아마도 가야의 이름을 자의적으로, 땅덩어리가 큰 고령을 대가야로 하고 그에 대칭되도록 고성을 소가야로 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그것은 조선시대 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경상도 읍지, 영남 읍지, 교남지 등에는 소가야라는 이름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대신 고성을 고자군으로 기록해 놓은 것에서 그렇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소가야’란 명칭을 그대로 쓸 경우 고성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것이라 본다. 자라나는 고성의 미래세대에게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처럼 불굴의 도전정신과 용기를 심어주고 꿈과 이상으로 웅지를 품게 하여 소위 진취적이고 외향적인 ‘큰 그릇’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소가야’란 이름부터가 어쩌면 스스로를 옥죄이고 위축시킨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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