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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權近>과 입학도설<入學圖說>
2022년 05월 13일 (금) 11:24:59 손서호 기자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권근(1352~1409)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명족의 하나인 안동 권 씨 출신으로 여말선초의 관학에서 정도전<鄭道傳>과 쌍벽을 이루었던 뛰어난 학자였다.

 
특히 권근은 입학도설<入學圖說>, 오경천경록<五經淺見錄> 등 이 저술을 통해 여말선초의 성리학<性理學> 및 경학<經學>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였으며 또 동국사략<東國史略>, 효행록주<孝行錄註> 등을 지어 성리학적 이념을 현실의 정치 사회속에서 구현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입학도설은 권근의 대표 저술로써 그의 학문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책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입학도설이 지어진 배경과 입학도설에 반영된 권근의 사상적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5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고려 왕조의 운명이 그 끝을 행해가고 있던 1390년(고려 공민왕2) 가을 권근은 전라북도 익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유배생활을 시작한 것은 명나라에 사신을 다녀온 직후인 1389년 10월이었다.
 
당시 고려조정은 1389년 4월 사전개혁<私田改革> 논의를 계기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역성혁명파와 고려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려는 온건개혁파로 나눠져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권근은 스승인 이색<李穡>의 주장에 동조하여 온건개혁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같은 온건파이자 성균관 수학시절부터 학문적 동지였던 이숭인<李崇仁>이 대간의 탄핵을 받자 권근은 소를 올려 이숭인을 변호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로 인해 권근 역시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황해도 우봉<牛峯>으로 유배되었고 그 후 유배지를 여러 차례 옮겨 다닌 끝에 익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익주에서의 유배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양촌집<陽村集>에 수록된 시문들을 보면 권근은 익주 유배 시절에 그 지역의 관리들이나 학자, 승려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교유하였고 미륵사<彌勒寺>를 비롯한 인근의 명승지에도 자주 다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몸은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고 자유로워졌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 조정의 관리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 그는 유배라고 하는 정치적 시련을 맞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조정의 실권은 역성혁명 세력에 장악하였고 스승 이색을 비롯하여 고려를 지키기 위해 애쓰던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은 대부분 유배되거나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근이 다시 출사하여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권근은 정치적으로 불우한 시기를 맞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학문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기도 했다.
 
즉 관직생활로 인해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던 권근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20여 년간 연구 축적한 자신의 학문을 돌아보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한편 당대의 최고 학자 중 한 사람인 권근이 익주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자 인근의 많은 유생들이 그에게 배우기 위해서 유배지로 찾아왔다.
 
권근도 자신이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에게 와서 대학과 중용을 배우는 초학자들이 한 둘 있는데 거듭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다’ 입학도설서<入學圖說序>라고 하는 권근의 술회를 볼 때 그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교육의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권근은 어떡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제자들에게 성리학의 기본원리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권근이 생각해 낸 방법은 성리학 핵심 원리들을 그림으로 정리하여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권근은 주돈이<周敦?>의 태극도<太極圖>를 전범으로 삼아 성리학의 핵심적인 원리와 여러 경서<經書>들의 주요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을 때 그림의 내용을 다시 글로 설명하여 학생들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권근은 자신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도설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입학도설<入學圖說>이다.
 
입학도설은 권근 스스로가 밝힌 바와 같이 처음 학문을 시작하는 초학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입문서 성경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권근은 자신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도설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입학도설<入學圖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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