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마니산 참성단과 강화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고인돌은 이곳이 역사의 시작이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강화는 몽고족의 침략으로부터 내땅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였고 근대 이후에는 일본과 구미 열강의 야욕을 막는 전초기지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팔만대장경과 금속활자도 모두 이 곳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강화 사람들의 고향 사랑은 남달리 애틋하다.

 

그들은 전에도 연개소문과 이규보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97년 가을 하일리 고개 마루턱에 조선 후기를 살았던 한 선비의 숭모비를 세웠다.

 

그 사람은 지금부터 300년 쯤 강화에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열었던 하곡 정재두(1649~1736)이다.

 

정재두는 다시 가장 큰 배척의 대상이었던 양명학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학문을 이룸으로써 조선사상사에서 가장 뛰어난 양명학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서인노론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주자학 일색의 문화를 강하해 가던 중 60세가 넘어 강화에 들어온 뒤 학문을 갈망하는 젊은 선비들에게 양명학을 가르침으로써 근대의 시련을 지켜낸 강화의 등대가 되었고 오늘날 또 다시 강화의 자랑이 되고 있다.

 

정재두는 정몽주의 11대 손으로 태어나 88세를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과거 공부 대신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에만 몰두하겠다고 어머니께 청을 드려 허락을 얻은 뒤 일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어려서 주자학을 배웠던 정재두가 이단의 학문으로 지목된 양명학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여 세 무렵부터 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학문이 양명학임을 밝힌 것은 34세 무렵이었다.

 

병이 심해진 정재두가 아우에게 집안일을 당부한 뒤 스승처럼 모시던 박세채에게 하직편지를 드리면서 자신의 공부가 양명학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죽을 줄 알았던 병이 나아서 88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정재두에게나 우리 사상사에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정재두는 드러내 놓고 양명학을 하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스승뻘의 박세채와 윤증 그리고 친구였던 최석정, 민이승 등이 정재두의 학문을 놓고 20여 년에 걸쳐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들 대부분 인척관계였고 정치적으로는 같은 소론이었으며 학문적으로는 우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정재두가 이단의 학문에 빠진 것을 걱정해서 빨리 양명학을 버리고 주자학으로 돌아오라는 분위기였지만 나중에는 집권세력인 노론에게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금기시 되던 양명학의 불똥이 소론 전체에 미칠 것을 걱정하여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연을 끊자고도 하였다.

 

그나마 늦게까지 서로를 걱정하며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윤종이었다.

 

하지만 논쟁 과정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정재두는 40세 때 서울을 떠나 안산으로 그리고 60세 때 다시 강화로 거처를 옮긴다.

 

비록 ㅐ인적으로는 불행이었겠으나 이처럼 아픈 과정이 없었다면 정재두에 뿌리를 둔 한국 양명학도 그 위에 피어난 강화학파도 없었을 것이다.

 

예순이 넘은 정재두가 강화도로 들어가자 이광사처럼 참 학문을 갈망하는 여러 젊은 선비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이끌고 강화도로 들어왔고 이들로부터 강화학파가 시작된다.

 

그들에게 정재두는 주자학만이 학문이던 숨 막힐 것 같은 세상에서 참 학문의 길을 비쳐주는 강화도 고갯마루에 우뚝 선 등대였다.

 

물리에서 생리를 가려내고 생리 가운데서 진리를 택한다.

 

양명학은 16세기 초 중국의 왕수인이 만든 사상이다.

 

주자학은 원나라 이후 관학이 되면서부터 오히려 현실과의 긴장관계를 놓침으로써 학문적 생명력을 잃어갔다.

 

특히 15세기 중반 명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농민봉기가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주자학은 이러한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상황이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구로 이어지면서 양명학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