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을 줄뿐 아니라 마음까지 황폐화 하기 때문이다.

황폐화 황은 마음이 아픈 것이고 폐는 몸이 아픈 것이다.

마음과 몸은 둘이 아니어서 늘 같이 가는 법,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힘들어 진다.

예나 지금이나 행복한 삶에는 건강한 몸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하여 질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욕망이 되어 왔다.

하화마을 이용태 묘에서 나온 유명한 한글 편지가 있다.

이 편지는 이용태의 처 원이 엄마가 쓴 것이다.

1586년 여름 어느 날 알 수도 없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하루아침에 남편이 작고하였다.
 

죽은 낭군을 그리워하며 애절하게 울부짖는 여인의 슬퍼하는 모습이 이 편지에 기록돼 있다.

원이 엄마가 쓴 이 편지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이어서 그 당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 담긴 감동적인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용태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의 원인을 16세기 조선사람들이 알 리 없다.

세균과 바이러스 개념 자체가 없었고 페니시린 등의 항생제도 전혀 없었던 시대에 질병은 참으로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다.
 

조선조시대 한글 편지 중에서도 현풍 곽 씨 언간을 중심으로 삼아 조선조시대 사람들이 앓았던 몇 가지 질병과 여기에 얽혀 있는 사연을 알아보기로 한다.

인간이 만든 여러 제도 중에서 노비제도는 가장 비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노비는 지배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비는 남녀를 통칭하는 것인데 이 중 남자를 남노<男奴>라 하고 여자는 여비<女婢> 혹은 여종이라 하였다.
 

현풍 곽 씨 언간에는 곽주가 그의 여종이었던 연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사연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곽주의 글 속에는 연홰에 대한 인간적 배려와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노복에 대해 매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주인임을 보여준다.

다음 편지는 곽주가 연홰의 죽음을 애달파 하며 아내 하 씨 편에 보낸 것이다.
 

‘연홰는 그런 놀라운 일이 어디 있을꼬. 평생에 상전한테 못하겠다고하며 얼굴에 싫은 기색을 내지 않던 종을 죽여버렸으니 주인의 불운이야 여기서 더 큰 불운이 어디 있을꼬. 저도 불쌍하고 제 자식도 불쌍하여 하네. 건곽란에 걸린 사람은 늘 추워하는 법이라고 하면서 연홰를 뜨거운 구돌에 눕히고 옷을 많이 덮어서 그릇 다루어 죽었는가 싶으니 더욱 불쌍하네.’(현풍 곽 씨 언간 20번지)
 

연홰는 여종의 이름으로 한자의 연화<蓮花>의 당시 속음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주인에게 말대꾸 한 번 하지 않을 만큼 유순하던 여종 연홰가 건곽란에 걸려 급사해 버렸다.

더욱 아쉬운 것은 곽주가 출타한 사이에 건곽란에 걸린 연홰를 잘못 치료하여 뜨거운 방에도 눕히고 덥게 하여 도리어 악화시켜버린 것이다.
 

건곽란<乾?亂>은 별 것 아닌 병이다.

변질된 음식의 독기가 위장에 몰려 갑자기 배가 비트는 것처럼 아프다.

토하려 하면서도 토하지 못하고, 설사할 것 같으면서도 설사하지 못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오른다.

심하면 얼굴이 창백하고 손발이 싸늘하며 식은땀이 나고 맥이 잘 집히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는다.

증상이 덜 심할 때는 곽향정기산을 쓰고 중할 때는 소합향원이나 자금정을 쓰면 가라앉는다.

이런 병에 걸린 연홰를 잘못 치료하여 뜨거운 방에 눕히고 이불을 잔뜩 덮어 오히려 병을 악화시켜 종말에는 죽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곽주가 출타하지 않고 집에 있었더라면 올바른 처방을 써서 이토록 허망히 죽게 두지 않았을 것을 각주의 아쉬움은 한이 없다.
 

또 다른 편지에서도 이와 같은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연홰는 이십대 초반의 아주 젊은 나이다.

얼마나 애절하고 슬퍼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