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년6개월을 근무하였던 영현지점 근무를 마치고 하일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영현지점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곳이며 즐겁게 근무한 곳이었습니다.
 영현면은 우리군의 읍. 면 중에서 가장 작은 지역의 하나이며  환경이 열악(劣惡)한 곳입니다. 인구수는 적고 고령화 되어 있으며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시설농업을 어렵게 하며 계곡을 따라 형성된 좁은 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미맥위주의 농촌으로 산(山) 역시 높고 경사가 높아서 과수재배에도 적정지역은 아니라는 평가입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영현면의 주민들은 근면과 성실로서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있는 곳이며 순박하고 인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이 사시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농협의 사업을 보면 전국의 지역농협의 사업이 대동소이하지만 영현지점은 조그마한 가공공장이 있는 관계로 설 명절에는 햅쌀로 떡국을 만들어 전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뛰어난 맛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산 원료를 사용한 23곡 선식(미숫가루)은 건강식품으로서 위치를 인정받아 전국에서 주문이 공룡나라 쇼핑몰 등으로 연중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참기름을 짜며 지역의 조합원들이 생산한 품질 좋은 고춧가루를 부수기에 조그마한 가공공장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재배된 영현면의 고추는 좋은 품질로 인정받아 생산량이 그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생산량이 많이 줄었지만 영현의 특산물인 밤(생율) 판매를 위하여 우리농협 직원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의 깨끗하고 순박한 마음처럼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영천강은 고성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며 빙어회, 피리회와 튀김 매운탕은 별미중의 별미이기도 합니다.
 봉림마을에 사시는 팔순을 바라보는 30대 못지 않은 힘과 주량(酒量)을 자랑하시는 윤완석 어르신은 저에게 “이차장 내가 이렇게 건강한 것은 보약을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영천강의 피리를 70년 동안 회와 매운탕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라고 하십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지인(知人)중에서도 영현면의 피리회와 매운탕을 장복(長服)한 후 “오줌발이 요강(尿堈)만한 자갈을 모래로 만든 경우가  있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현지점에서 근무시 위대한 영현인을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 분은 평촌마을에서 농사일을 하시면서 살아가시는 팔순을 바라보시는 김경규 전 영현농협 조합장님 이었습니다. 조합장님께서는 재일동포 윤형석님께서 설립한 영현장학회의 이사 및 이사장을 맡아 오시면서 손수 벼, 보리, 감, 밤, 매실등 각종 농사를 지어 그 경비를 공제하고 남은 돈을 해마다 기부하시어 현재까지  4500만원을 영현장학회에 기부하신 분입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오신 조합장님과 저와 개인적인 대화중의 내용입니다. 제가 “조합장님 그렇게 힘들게 농사지으신 돈을 어떻게 장학기금으로 기부를 하십니까?”라고 하니 조합장님이 웃으시면서  “이차장 며칠 전에 방송을 보니 500억원을 내신분이 있더라 (영화배우 강신성일씨의 500억원 출연 ) 나는 돈이 없어서 이정도 밖에 못하니 안타깝다” 라고 하셨습니다. 감동은 받은 저와 이장열 전 지점장도 아주적은 금액이었지만 영현장학회에 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조합장으로 계실 때의 일화를 보면 1990년 영현지점을 신축하게 되었을 때 공사비 1억원중 10%인 1000만원을 조합장님 사비(私費)로서 부담하신 분이며 영현면의 크고 작은 행사시에 많은 기부와 선행을 평생에 걸쳐 묵묵히 행동으로 일관하여 실천하신 분입니다.
 1년 동안 저와 카풀(car pool)을 하시다가 퇴임하신 이장열  전 지점장께서 하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차장, 김경규 전조합장님께서는 영현면의 큰 어른이시고 우리 고성의 큰 어른이시다.” 라고 하셨습니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결과 저 역시  개인적으로 큰 어른이시며 위대한 분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매일 방송에서 터져 나오는 고관대작(高官大爵)이나 유명인사(有名人士)들의 비리는 물론이고 쥐꼬리 만한 완장(腕章)이라도 차게 되면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망각하는 사람들과는 정신세계와 행동이 전혀 다른 분입니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수천평의 과수원과 논밭을 직접 농사일을 하시면서 식사준비  빨래등 모든 가사일을 하시면서 힘든 모습이라고는 전혀 볼수 없는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사모님을 위한 지극하신 사랑은 말과 글로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2009년 봄 일요일, 조합장님의 과수원에서 매실수확을 돕다가 조합장님 집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조합장님의 사정을 들었던 저는 도시락이나 식당에서 점심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조합장님께서 “이차장 점심은 내가 해줄께”라고 하셔서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게 된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사모님의 상태(狀態)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혼자서는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시는 상황이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조합장님께서는 “이차장 이것이 내가 사는 모습이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무한한 감동과 함께 만감(萬感)이 교차(交叉)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습은 가족이 1년은 고사하고 한달 만 입원하여 있어도 가족 간에 사이가 멀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날 점심은 조합장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밥과 반찬, 다슬기 탕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마치자 조합장님께서는 “이차장, 다슬기 꼬리를 깨어 빨아먹으면 더욱 맛있네”라고 하셔서 해보니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차장 점심을 위하여 내가 영천강에 가서 다슬기를 직접 잡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집사람과 함께 봄에는 매실 수확에 가을에는 감이나 밤 수확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조합장님께서 손수 지어주신 점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매실과 감과  조합장님의 정신(精神)을 가득 담아 집으로 갑니다. 한마을에 살고 있는 권진기씨께서도 영현면을 위하여 10년째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왕대밭에 왕대난다”라고 하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조합장님께서 수십 년 동안 해 오신 선행은 우리 군에서 발굴하여 군민의 사표(師表)로 삼으시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며 고성군의 신뢰를 더한층 높여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가오는 6월초 집사람과 함께 조합장님 과수원의 매실 수확에 참여하고 큰 어른께서 80년의 세월이 각인(刻印)된 거칠고 마디마다 큰 반지를 낀 것 같은 투박한 손으로 지어주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올 것입니다. 순박(淳朴)하고 정결(精潔)한 마음을 가진 영현면민과 큰 어른이 계시는 영현면(永縣面)은 위대(偉大)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