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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피는 동백꽃
2021년 12월 03일 (금) 10:38:44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눈에 짓눌린 솔과 대도 부러질 듯 한데 선홍빛 몇 송이 꽃 참신하게 피었어라. 산 속의 집 적막하여 찾는 이 없는데 이따금 이름 모를 새가 몰래 와 쪼아 먹네. 소나무와 대나무도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였지만 동백은 선홍빛 꽃송이를 피운 것을 청송하였다.

 
동백은 눈 속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선비들은 그 절조를 사랑하였다.
 
18세기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은 자신의 집에 가꾼 꽃에 대한 기록에서 동백의 미덕을 다음과 같이 칭송한 바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바뀌지 않지만 겨울에 꽃을 피울 수는 없다.
 
동백은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데 곱고도 많으니 아름답다.
 
비록 그러하지만 동백은 남방에서 자라므로 북쪽에 옮겨 심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동백의 절조는 땅 때문이라 하겠다.
 
이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하늘(기후를 뜻한다) 때문에 절조를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굴원<屈原>은 귤에 대한 찬송의 글 귤송<橘頌>에서 ‘천명을 받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남국에서 자라네’라고 하고 또 ‘깊고도 굳건히 뿌리 박아 옮길 수 없으니 한결 같은 마음이라네’라 하였으며, ‘홀로 서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으랴’라 하면서 거듭하여 탄식하였다.
 
그리고 유독 옮겨가지 않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아 끝내 이를 백이<伯夷>에 비하고 모범으로 삼았다.
 
그러니 동백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 없는 것 역시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니겠다.
 
이 때문에 내가 동백을 사랑함이 정말로 소나무와 잣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송백지후조<松柏之後凋>라는 말로 세한<歲寒>의 절조를 자랑하지만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비하여 동백나무는 잎도 겨울에 떨어지지 않거니와 꽃까지 피우니 그 절조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능가한다하겠다.
 
게다가 소나무와 잣나무는 옮겨 심어도 자라지만 남쪽에서 자생하고 자라나는 동백은 북쪽지역에서 키우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더욱 그 절조가 높다.
 
신경준은 이렇게 동백의 미덕을 칭송하였다.
 
동백의 이러한 미덕으로 인하여 버림받은 신하의 일편단심을 대변하는 역할은 한 적도 있다.
 
충숙왕 때 채홍철<蔡洪哲>이 죄를 입어 먼 섬 지역에 유배되었는데 자신이 모시던 충선왕을 그리워하여 동백목<冬栢木>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이에 충숙왕은 바로 그날 채홍철을 소환하였다고 한다.
 
지금 이 노래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영사악부<詠史樂府> 중 동백나무에서 노래를 다루었다.
 
이를 소재로 한 사연을 전한다.
 
고려사에는 동백목의 창작 배경을 적은 다음 예전부터 이 노래가 있었는데 충선왕의 무덤에 동백나무가 푸른빛을 영원히 비추기에 양왕이 아끼던 신하 채홍철을 다시 불렀다고 한다.
 
충숙왕은 중국에서도 이름난 동백꽃을 수입 한 바 있으니 그 역시 동백을 사랑하는 임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동백에 대한 사랑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이든 봄에 꽃을 피우는 춘백이든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남쪽의 도서 지역에서 자생하므로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동백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양화소록에 보면 당시 한양에서 동백을 키우는 방법을 소개한 바 있었다.
 
단엽의 동백은 남쪽 지방의 섬에 잘 자라는데 사람들은 이를 베어 땔감으로 쓰고 열매는 따서 기름을 짜 머릿기름으로 쓴다.
 
남해의 도서 지역에서는 채취하여 바닷물에 버릴 정도로 흔하였다.
 
여인들은 동백 열매를 채취하여 머릿기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동백꽃을 보기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강화안은 화분에서 동백을 키우는 법을 자세히 적었다.
 
동백 열매를 땅에 심어두면 싹이 트는데 이를 작은 화분에 옮겨 심은 다음 접을 붙인다.
 
접붙이는 방식은 매화나 국화 등 여러 꽃이 다 비슷한데 양화수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 참조하면 동백을 접붙이는 법은 이러하다.
 
동백나무는 둥치가 화분에 바로 옮겨 심어 가지가 돋아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천엽의 동백나무와 접을 붙이게 된다.
 
땅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다 화분을 매달고 접붙일 곳의 껍질을 벗긴 다음 두가지를 서로 붙이고 칡넝쿨로 단단히 동여 멘다.
 
완전히 붙고 나면 가지를 잘라 분리시킨다.
 
화분에 키울 때에는 쉬이 건조해 지므로 자주 물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동백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동백이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동백정이라 한 사례가 많았다.
 
고경명, 이항복의 시에 등장하는 비인현의 도둔곶에 있었다.
 
김종직의 시에 보이는 동백정은 무장현의 관아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기슭이 바다 안으로 쑥 들어갔고 삼면이 모두 물인데 그 위에 동백나무가 푸르게 우거져 몇 리나 뻗어 있어 이는 호남에서 다시 없는 경치 좋은 땅이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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