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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2021년 11월 26일 (금) 11:21:4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는 삶에 고통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의히 안다.

 
같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와 우리는 어찌 이다지도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문제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우리는 피하려고 하지 고통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지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란 결코 없다.
 
행복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가를 처음 하면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니 절로 아프다.
 
“그 자리에 오는 고통을 즐기세요”라는 얄미운 고수의 한마디, 그러나 몇 년 해보니 맞는 말이다.
 
어디 운동만 그렇지 않다.
 
세상사는 일도 그렇다.
 
잔꾀부리거나 문제 없는 척 눈감지 말고 고통에 적극 대처하면 그 자리가 곧 행복이다.
 
나무가 시린 겨울바람을 견디는 힘도 가지 끝 겨울에서 나온다.
 
고통은 희망과 노력을 통해 행복으로 진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고통을 관련된 것을 살펴보자.
 
 
1.동변상련<同病相憐>
 
동상병련은 같은 병 또는 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고통을 헤아리고 동정하는 마음을 말한다.
 
춘추시대에 오나라 태자 광<光>은 오자서<伍子胥>가 천거한 자객을 보내 사촌동생인 요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큰 공을 세운 오자서는 대부로 임명되었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처형당하자 복수할 뜻을 품고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그가 태자 광을 도운 것도 태자의 힘을 빌려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오왕 합려(태자 광)가 직위한 해에 초나라에서도 또 한 사람의 망명객이 찾아왔으니 바로 백비 였다.
 
백비 또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 백주려가 죽임을 당하자 오자서를 의지하여 오나라로 망명했다.
 
오자서가 백비를 천거하자 대부 피리가 반대하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같은 병에 서로 가엾게 여기며 근심을 같이하고 서루 구제하였다.
 
오자서는 백비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초나라를 공략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니 부형의 원수를 갚은 셈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피리의 예언대로 백비는 오히려 오자서를 모함하여 죽게 만들었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2.와신상담<臥薪嘗膽>
 
와신상담은 땔나무 위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목적을 위해 온갖 고난을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
 
동병상련에서 등장한 인물이 또 등장하니 바로 오왕 함려이다.
 
당시 오와 월은 숙명의 라이벌 관계였다.
 
합려는 BG496년 월나라로 쳐들어갔다.
 
월왕 구천에게 패하고 부상 후유증으로 숨졌다.
 
그 아들 부차는 본국으로 돌아온 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땔나무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살마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 마다 “부차야 아버지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였다.
 
월왕 구천이 부차의 소식을 듣고 먼저 오나라를 쳐들어갔으나 패하고 말았다.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은 끝에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돌아오자 자리 옆에 항살 쓸개를 메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으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쳐서 이기고 오왕 부차를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오와 월의 숙명적인 대걸 사이에서 생긴 말이 와신상담이다.
 
 
3.유학용어 해설
유학사상을 관통하는 중심개념은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중은 유학사상에서 오래도록 고민했던 개념이었으니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도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중은 무언인가.
 
가운데란 뜻을 가지고 있으니 나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며 무엇이든 눈에 띄지 않게 평균만 하라는 뜻일까.
 
성적으로 치면 일등도 아니고 꼴등도 아니고 중간쯤 하라는 의미일까.
 
중은 그런 산술평균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공자는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대한다.
 
군자의 중용은 때에 따라 알맞게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은 바로 시중이라고 할 수 있다.
 
시중이란 때와 장소 그리고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나 존재자에 다라 옳게 생각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주체가 처한 상황은 변화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올바름이 항상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중은 변화성과 항상성을 동시에 가진 개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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