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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의 의병활동
2021년 10월 15일 (금) 11:18:40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1905년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뒤이어 1907년 헤이고 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가 퇴위되고 한국 군대마저 해산될 무렵에 윤희순은 더욱 적극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동리 사람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해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여 이를 무기와 탄환으로 제조하고 의병들에게 공급하여 일본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의병가사의 창작이나 어머니의 보살핌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만으로는 현대화된 무기를 사용하는 일본과 도저히 항전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병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의병활동에 지장이 많음을 인식하고 윤희준은 가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갔다.
 
윤희순은 만주에서 초근목피로 생활하면서 이웃마을 한족 조선족에게 반일선전을 하여 군자금을 찬조 받아 반일단체에 전해주는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런 도중 틈틈이 시부에게서 의병교육을 받아 이를 근간으로 노학당<老學堂>을 건립하여 50명의 항일투사를 육성해 냈다.
 
항일투사들에게 독립활동의 여건을 조성해 주는 동시에 조국을 위한 미래의 항일인재들의 교육을 함께 진행했던 것을 보면 우리는 윤희순이 합리적인 애국정신이 투철하였다고 본다.
 
윤희순이 독립에 대한 의지는 식부와 남편이 작고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20년에는 아들 돈상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과 함께 조선독립을 위하여 조선 독립단 학교를 세워 학생들에게 국권회복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주기도 했으며 대한 독립단 가족부를 만들어 부대원들과 같이 훈련에 투신하기도 했다.
 
이처럼 윤희순은 가족을 잃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이를 실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개인적인 고통보다는 국가의 독립이 더욱 절실하다는 강한 구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희순의 국권 회복에 대한 꿋꿋한 의지는 반일 감정은 일경들에게 발각되어 전 재산을 몰수당하여 파산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독립운동은 계속하였다.
 
심지어 둘째 아들 민생의 처갓집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정하고 두 아들과 함께 당당하게 항일운동을 펼쳐나갔다.
 
윤희순은 아들들의 재산까지도 독립운동에 투자 하면서 끝가지 대한조국에 대한 독립운동에 기세가 당당하였다.
 
하지만 1935년 7월 19일 독립운동으로 장남 돈상이 일본경찰의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하자 비통을 금치 못한 윤희순은 아들이 죽은 지 10일이 되는 날 민주당(중국) 외국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이와 같이 윤희순은 전통사회의 부덕<婦德>을 몸소 실천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전 재산을 버리면서 헌신적으로 공헌하였다.
 
야욕 많은 일본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전쟁의 야욕을 키워가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 여성들 중 의병활동을 수행했던 윤희순의 호국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호국정신이 갑작스레 생기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호국정신을 고양하고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어렸을 때부터 고등교육을 받을 때까지 교육적인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 져야 한다.
 
역사교육은 그 나라의 흥망성쇠의 과정을 이해하는 신념을 제공해 성장함으로써 그 민족에게 애국심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을 함양시키므로 인하여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역사탐방까지 병행하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옛날의 역사를 탐구하고 확인하게 되면 그 때의 역사의 사건들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의 교과과정에 있었던 교련훈련이 부활되어야 한다.
 
전란 중에는 부상당한 군인들이 많아 이들의 상처를 신속히 간호하는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수호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윤희순의 신념이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여성들에게도 강한 호국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혹시 모를 일본의 침략에도 국가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평생 동안 국권수호운동을 전개한 인물이 바로 윤희순(1860~1935)이다.
 
윤희순 집안은 시부 외당 유홍석(1841~1913), 남편 유제원(1859~1913), 아들 돈상, 민상, 교상 등 삼대가 모두 구국의지를 몸소 실천한 가문이다.
 
1895년 명성황후가 왜놈들에게 시해되고 단발령이 강행될 때 시부의 당이 의병작전을 전개하였고 윤희순은 의병가를 창작하여 가정주부들에게 보급하여 이를 널리 선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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