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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남이장군 일화 ②
2021년 09월 10일 (금) 10:30:23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관청과 같았고 당상에는 늙은 괴수가 앉았는데 예쁜 계집들이 곁에 섰고 많은 사람이 나와 손님 접대하기를 구면<舊面> 같이 하였다.

 
식사를 대접하고 나서는 남이에게는 하인과는 별도로 궁궐과 비슷한 별채 숙소로 안내를 해주었다.
 
방에 들어가 있는데 한 소녀가 와서 잠자리를 보여주며 시중을 드는 척하더니 남이의 귀에 하는 말이 “나는 인근에 있는 양가집 딸인데 이곳에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이집 주인은 도적의 무리로써 이 앞을 지나가는 상인을 끌어들여 죽이고 그 재산을 뺏는 대적입니다. 지금 그대의 하인들에게 독주를 먹여 땅 속 깊은 굴에 가두었고 가지고 온 짐들은 다 곳간에 넣었으며 객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목을 조르거나 혹 독차나 독주를 먹이거나 비상을 불태워 연기를 쏘이게 하여 목숨을 거두는데 오늘은 소녀로 하여금 동정을 살피게 하면서 독 연기를 사용할 것 같사온데 낭군을 뵈오니 인걸<人傑> 같아 이를 고하오니 부디 살길을 도모하시라”고 일러주거늘 남이는 소녀에게 냉수를 많이 떠오게 하고 옷을 찢어서 들메끈(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졸라맴)을 하고 물을 적셔 코와 입을 막고 자는 체 하니 소녀가 나간 뒤부터 독연기가 스며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전방비를 한 남이는 끝내 무사하였다.
 
날이 밝을 무렵 한 도적이 죽었나 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남이가 발로 걷어차고 또 들어오는 자를 걷어차 연거푸 세 놈을 고꾸라뜨렸다.
 
도적들의 비명소리에 두목이 놀라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주먹으로 쳐서 혼절시키니 도적 무리들이 당황하여 담을 뛰어 넘거나 몸을 숨기기 바빴다.
 
순식간에 수십 명을 때려눕히고 장중을 휘어잡으니 도적무리들도 위세에 눌려 꼼짝 못하고 모두 굴복하였다.
 
이에 남이가 당상에 올라가 결박된 무리들을 문초하여 도적과 양민들 구분해 관청에 인계를 하고 오로지 자기의 짐들만 챙겨서 돌아가니 모두들 남장군이라 소년장수의 칭호를 얻었다 한다.
 
15살 무렵 출사에 뜻을 두고 축령산에서 천문과 지리를 익히는 한편 무술 연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가는 한 계집종이 이고 가는 광주리에 분을 바른 여귀가 앉아서 가는 것을 보고 괴히 여겨 따라가 본 즉 한 대가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집에서 곡성이 낭자하여 남이는 대문을 두드리고 사연을 물어본 즉 작은 따님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다.
 
남이는 분귀 짓임을 직감하고 “내가 들어가서 한 번 살펴보면 살릴 수 있겠다”고 하였으나 외간남자를 들이는 것을 꺼려 망설이는 듯 하다 사태가 다급해 지자 대감의 허락을 받아 남이를 안내하였다.
 
별당으로 들어가 보니 분두귀<粉頭鬼>가 낭자의 가슴을 타고 앉아 있다가 남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슬며시 내려앉으니 낭자가 의식을 차리고 살아났다가 남이가 밖으로 나오니 낭자가 또 죽었다고 소동이 이는 지라 남이가 “방금 갖고 들어간 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먼 친척이 보내온 홍시이온데 낭자가 맨 먼저 먹고 숨이 막혀 죽었다”고 하였다.
 
남이가 다시 들어가 분귀를 퇴치하고 사기를 다스리는 약방문을 주어 구하니 그 낭자가 좌의정<左議政> 권람<權覽>의 4째 딸이라 하였다.
 
권람은 기이한 일로 딸을 살려 인연이 되었으므로 총각과 정혼을 하고자 점을 치니 이 사람이 반드시 죄사<罪死>하리라 하여 실망을 하였는데 딸의 명을 점치니 복자<卜者>가 말하되 “명은 더 짧고 아들은 없겠으나 복은 누리되 화는 보지 않을 점괘오니 사위를 삼음이 옳겠습니다”하여 그대로 따랐는데 과연 권 씨 부인은 남이보다 먼저 작고하여 화를 면하였다.
이 혼인 설화는 연려실, 쳥야만집, 대동기문 등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야사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주장할 바가 못 되는 내용이다.
 
오히려 안동 권 씨 가문과의 교류는 양촌 권근 선생의 매화 시인 남씨댁 매화 3수의 일화에서 나오듯 권람의 조부인 문충공 권근과 남이의 고조부가 되시는 충경공 남재는 조선건국 초기에 오랜 친분을 쌓아 양가가 깊은 규류를 해온 바 서로의 집안 내력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이고 남이의 조부인 소간공 남휘는 정선공주(태공의4녀)와 혼인하여 명문세족의 반열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분두귀의 설화를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혼담이 오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건 주지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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