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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팔국과 소가야연맹체
4. 소가야연맹체
2021년 09월 03일 (금) 10:31:23 정호용 전 고성군의회 의원 gofnews@naver.com

   
▲ 정호용 전 고성군의회 의원
소가야연맹체는 상호간 상하가 아닌 병렬적 연맹관계로 종속적인 면은 약하다.

소가야연맹이 횡적인 지배구조를 갖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역에 치중하여 해안가를 중심으로 개별적인 정치체로 분리되어 통합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에 있다.

소가야양식토기는 매우 불규칙한 권역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소가야 정치체가 작은 단위사회들간의 일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음을 의미하는데, 포상팔국 및 소가야연맹체의 정치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포상팔국 전쟁 이후에 포상팔국 소속 항시세력은 두갈래로 나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자국이나 내산리 세력같이 금관가야나 아라가야로부터 먼 세력은 그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여 후기가야 대외교역의 요충지로 성장했지만, 골포국이나 칠포국 세력은 주변 유력세력(금관가야나 아라가야)에 흡수되거나 영향하에 들어간다.

현동세력은 초기에는 칠포국의 외항으로 기능한 것으로 보이나 포상팔국 전쟁 뒤인 4세기 중엽 이후 아라가야의 외항으로 기능하면서 전형적인 항시세력으로 성장한다.

항시의 발전단계는 교역장→항시→항시국가의 순으로 볼 수 있다.

사천 늑도는 교역장 수준이고 마산 현동이 대표적인 항시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몇 개의 항시를 통합하는 상위의 정치체를 항시국가로 본다면 포상팔국 가운데 고자국이 초기적인 모습의 항시국가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항시(국가는 그 시초로서 기원전 1세기경의 소규모 교역장인 늑도유적에서부터 기원후 6세기 중엽 고자국 중심의 소가야연맹체 단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남 남해안에서 항시(국가)의 중심은 늑도→김해→마산만→고성으로 변화하였지만, 지역적 항시는 계속 유지되어 중심과 주변의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항시의 중심이 김해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전한 것은 신라의 서진과 관련하여 왜나 백제 등이 정치적으로 안전한 항구를 구해야 할 필요성과 관련이 있다.

고대사회에 남해안에는 여러 항시(국가)들이 존재했으며, 고성 송학동 세력을 주로 한 소가야연맹체가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항시국가 연맹으로 융성했을 때 내산리 세력은 종래 항시의 연장선에서 송학동 세력의 부용세력으로 그 존재했다.

본 원고는 그 내용을 다음 참고논문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참고논문

이동희 고성 내산리 집단의 성격과 포상팔국
김재홍 삼국초기의 해상영웅 
심봉근 고고학적으로 본 보라국과 문화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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