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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남이장군 일화 ①
2021년 09월 03일 (금) 10:14:30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국내 단일 관광지 중 외국인 방문객 최다 지역이 남이섬이다.

한류의 배경이 된 겨울연가의 주요 배경으로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 특히 일본의 한류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무슬림 관광객까지 방문하기 시작하자 2014년부터 공인인증 음식점까지 운영하고 있다.

섬에 비치된 관광안내문만 해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등 7개국 언어로 제작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명소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남이가 없다.

남이섬은 본래 홍수 때만 섬이 되었지만 1944년 일제가 청평댐을 건설하면서 북한강 수위가 상승했고 완전한 섬이 되었다.

1965년 남이섬 북쪽 언덕의 돌무더기 속에 남이장군이 묻혀있다는 민간의 정승에 기인하여 봉분을 쌓고 노산 이은상이 추모 글을 짓고 일중 김춘현이 글씨를 쓴 추모비가 있지만 허묘<墟墓>에 불과하다.
남이장군의 실제 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고 그의 사당과 기마동상은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있다.

유달리 남이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많다.
경기도 장호원에 있는 백족산의 지네굴 전설을 보면 동료 승려를 잡아먹는 지네를 죽였더니 오색영롱한 구름이 감돌다가 충북 음성에 있는 남 씨 집으로 사라졌는데 그날 이후 남 씨 문중에 태기가 있어 출생한 사내 아이가 남이장군이다라는 내용도 있고 경기도 용인시의 좌측에 투구봉이 있고 우측에 칼봉이 있는데 그 사이가 장군대지형인데 이곳에다 남 씨 문중서 묘를 썼고 그 후 남 씨 문중에 아기장수가 태어났고 낳은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았고 힘 또한 장사여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중에서 겁이 나서 몰래 죽여서 묻어 버렸는데 그날 맞은편 액고산 바위에서는 용마가 나와서 자신이 태울 주인이 죽었다고 하면서 매일 밤 울었다는 전설이 있고 앞서 장군의 탄생지로 지목된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평초·중학교의 교가에는 씩씩한 남이장군 기상을 받아서라는 구절을 전하고 있다.

실제로 남이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123번지(서울대학교 병원 일대 서울시에 설치)로 알려져 있으며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남이장군은 소간공 부마 휘와 태종 4녀 정선공주의 장손으로 태어났는데 정선공주의 살림집은 지금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의 일부인 수강재로 일명 정선방으로 불리던 곳이다.

이곳은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를 한 후 1429년 12월 20일부터 수강재로 이어하여 살았다고 한다.
남이장군이 이 수강재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10분 거리에 있는 연건동 123번지에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군이 출생하면서 낙산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에 낙산에는 풀이 자라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남이는 영의정 남재의 현손이자 태종의 부마 남휘 정선공주의 장손으로 1443년에 태어났다.
탄생설화도 비범한 내용들이 많지만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6세 때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일가 집 계집종이 모부인께 문후를 드리러 와서 기둥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둥을 살짝 들어 치마폭 위에 눌러 놓으니 계집종이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가 없어 울상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모부인이 웃으며 아이가 또 장난을 하였구나면서 꾸짖어 놓아주게 하였다는 일화도 있고 13살 무렵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사를 돌볼 사람이 없어 호남에 나가있는 외거노비들이 전지를 경작하고도 면포를 받치지 않거나 거친 하인들이 물건을 바꿔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남이장군이 친히 호남에 내려가 위엄을 보이니 남이의 당당한 기세에 눌려 감히 영을 어이기 모사고 수백 필의 면포를 거두어서 수레에 싣고 돌아오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어 인가도 없는 곳에서 잠시 방향을 잃고 지체하고 있었다.

숲에서 웬 동자가 나타나더니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하였다.
남이는 그 아이를 따라 6~7리를 갔더니 산모퉁이를 돌아 골짜기에 큰 집이 있는데 마치 관청과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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