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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새롭게 읽기
정해룡 시인의 칼럼 '돈자모티'(돌아 앉은 모퉁이)
2011년 05월 11일 (수) 09:28:49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5월5일은 어린이날이기도 하나 필자에게는 먼저 박경리 선생이 기억되는 날이기도 하다. 바로 이날 선생께서 돌아가시어 필자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 장례식을 가졌는데 통영이 생긴 이후 가장 성대한 장례식이라고 했다.

한 때 자신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안긴 고향을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으로 떠났으나 강을 따라 떠나간 어린 연어가 어미 연어가 되어 거친 물살을 헤치고 떠나 온 강을 거슬러 오르듯 고향으로 영원히 모귀회천한 박경리 선생께서 잠드신 묘소에는 오늘도 선생을 기리는 방문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선생께서 누워 계신 이곳 통영산양읍 양지농원에 있는 묘소에 서면 선생이 생전에 존경해 마지않던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승전의 그 바다에서 울려오는 장군의 저렁저렁한 독전소리가 귓전에 쟁쟁거리며 울려 올 것만 같다.

박경리 선생의 불멸의 대작 ‘토지’에 나오는 하동 악양 평사리가 마치 ‘토지’의 전부인 것처럼, 소설 ‘토지’를 말하면 먼저 평사리를 떠올리고 평가받고 있는 것에 대해 필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물론 소설 속의 최참판 댁과 주변 작중 인물들이 살던 정경을 하동군에서 재현해 놓고 ‘토지문학제’를 여는 것은 정말 잘하는 일이긴 하나 작가 박경리 선생이 ‘토지’에서 분명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은 하동이 아니라 통영이라는 것이다.

 ‘토지‘ 제1부는 소설 구성상 도입부에 해당 되므로 평사리가 주무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3부를 거쳐 제4부, 마지막 제5부에 이르면 ’토지‘는 온통 통영 이야기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요 작중 인물들과 그 2세들이 통영으로 와서 거주하며 충렬사와 세병관과 판데굴, 그리고 통영이라는 도시의 유래에 대한 세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예찬이자 통영과 연결고리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이 없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한산대첩이 없었다면 조선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를 달리 풀이 하자면 한산대첩의 통영이 없었다면 조선이 없었다는 것이니 곧 토지는 바로 통영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세계 주요 명작들이 하나 같이 자신의 고향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는 하나 소설 ‘토지’처럼 세계 어느 문학 소설 속에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이처럼 많이, 상세하게 해 놓은 작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유래와 왜 예술인이 많이 배출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옛날, 일개 편벽의 갯촌이었고 고성군(固城郡)에 달린 관방에 불과했던 이 고장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구국의 영웅 이순신의 당포(唐浦)와 한산도(閑山島)의 대첩을 거두게 되는데 그로인하여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군영(軍營)이 이곳 갯촌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바로 통영(統營)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통영에는 벼슬아치들을 따라 서울의 세련된 문물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며, 팔도 장인(匠人)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을 것이며 나라를 구하겠다는 지순한 영혼들이 이곳을 향해 팽배했을 것인즉, 그 위대한 힘과 정신이 마침내 찬란한 승리의 꽃을 피게 했던, 그것은 편벽한 갯촌의 엄청난 변신, 변화였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귀향을 서둘렀겠지만 해류관계인지 천하일미를 자랑하는 해물이며, 아름다운 풍광, 온화한 기후, 넘실대는 바다, 아득한 저편에 대한 동경, 그러한 생활의 터전을 사랑했을 감성 풍부한 장인들 자유인들이 잔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남쪽끝머리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른 통영의 주역들이며 뿌리가 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유례없는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통영 갓, 전국에 명성을 떨친 통영소반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선자방(扇子房), 칠방(漆房), 주석방(朱錫房) 등 공방이 이곳에 국영(國營)으로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자유와 창조의 정신들은, 고기 배 찔러먹는 뱃놈이라 하시를 하면서도 그 바다에서 신선한 활력을 받아 쇠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피는 맥맥히 흘러 이 땅에서는 아직 숨쉬고 있다.“ (『토지』제5부1권에서)

 독서하기엔 오히려 가을보다 더없이 좋은 5월이다. 공기가 달고 싱그러운 이 계절에 소설‘토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뜯어서 읽어 보면 ‘토지’는 ‘하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통영이라는 것을 새삼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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