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구절>

“할머니는 아직 우리 곁에 계셔. 다행히 우리한테는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해 드릴 시간이 있고. 그러니까 이건 기쁜 일이야. 비록 장례식이긴 하지만…….” (76쪽)

 

‘잘 죽고 싶었던’ 할머니의 살아있는 장례식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라며 돌아오는 생일에 생전 장례식을 하겠다는 할머니의 폭탄선언. 느닷없는 상황이 황당하기만 한 윤서와 가족들의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장례식 준비가 시작된다. 

 

아빠와 고모는 암으로 투병 중인 할머니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 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못 들은 척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두 사람의 심정과 현실로 다가온 할머니와의 이별을 눈치챈 윤서는 다짐한다. ‘아직 할머니가 곁에 있기에 기쁜 일일 수 있는 생전 장례식’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자고.

 

윤서와 친구들은 할머니 평생의 일터였던 시장 상인들의 영상 편지를 모으고 마지막에 전달할 감사패도 만든다. 아빠와 고모 역시 저마다의 준비를 해나가는 사이 뿔뿔이 흩어져 전화기 너머 화난 목소리로만 서로를 확인했던 가족들이 윤서네 집에 모인다.

 

방법은 다르지만 할머니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바람은 같았고 그 마음속에서 유대의 싹이 자란다.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말하며 결국엔 웃음 짓게 된 잔치 같은 장례식은 오히려 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가족들의 모습, 이를 지켜보며 가족의 의미와 죽음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윤서, 무엇보다 ‘잘 죽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 작가는 자칫 슬프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과정을 어린이의 천진한 시선과 덤덤한 말투로 그려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모든 시작에 끝이 있듯 죽음이란 유한한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이자 달리 본다면 지금 함께 숨 쉬고 있는 곁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그동안 조심스러워 어른들끼리만 쉬쉬했던 ‘죽음’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