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열전에 보면 양진<楊震>이란 사람의 기록이 자세히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정부패의 핵인 뇌물행위에 대한 그의 거부 발언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부패 척결의 기본에서 그것이 종종 확인되었던바 세종실록(29년 5월 壬子日)에 전하는 사헌부 상소문의 경우를 보면 아래와 같다.

한나라 양진<楊震>이 동래태수가 되어 창읍<昌邑>을 지날 무렵 그가 전에 과거시험을 거쳐 등용시킨 그 곳의 수령 왕밀<王密>이 찾아와 인사하던 중 밤에 금 열 근을 품고 와서 주려고 했다.

이에 양진이 말하기를 “오래 사귄 사이로서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이 사람을 모르니 웬일인가?”라고 하니 왕밀이 말하기를 “어두운 밤이라 아는 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양진은 또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天知神知>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子知我知> 어찌 아무도 모른다 말인가<何謂無知>”라고 하였다.

이에 왕밀은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위의 내용은 어떤 청탁성 뇌물이라기보다는 지난날의 배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하나의 예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진은 그 동안의 상호 관계에서 깨끗함으로 대했음을 재확인하고 사귀면서 ‘그 누구도 모른다’라는 은밀주의에 대하여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안다’라는 이른바 사지론<四知論>을 전개하였다.

이를테면 은밀성 부가의 논리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이 보지 않는 경우에도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차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의의는 지대하다.

그러므로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그것을 소개하여 공직자의 깨끗한 마음의 기반을 굳게 다질 수 있는 모델로 삼기도 했다.

나아가 그것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바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부정행위 노출자 대부분은 왕밀의 사고방식처럼 남이 알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은밀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은밀주의는 자기 스스로에 있어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별개로 여기는 이원화의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음이 또한 문제이다.

 

왕밀은 그것이 비록 옳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들이 보지 않은 경우라면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양진의 이른바 ‘안다’라는 말에 포함된 의미는 그와 다르다.

그것은 어??? 사실을 선의시비로 판단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까지를 가리키는 이른바 지행일치<知行一致>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안다’<我知>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각자를 향해 내가 알고 있다는 그 사실적 상황에서 양진과 왕밀이 다르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 행위의 연계성 여부였다.

결국 왕밀이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간 것은 양진이 추구한 지행일치성의 정서에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여기 ‘내가 안다<我知>’에서의 ‘나’라는 심도를 더 해주는 것이 곧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天知神知>에서의 하늘과 귀신이 다 이들은 나에게 불의니 비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 정의와 의리를 향한 내적 감시자로서 동양인의 의식구조에 상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맹자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하는 것 가운데의 두 번째인 ‘우러러 하늘을 보아 부끄럽지 않음’에서의 하늘이 뜻하는바 역시 그와 성격을 같이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인에 있어서는 각자의 세계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그처럼 하늘이나 귀신을 절대시 하기는 곤란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때로는 부분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안다<我知>’라는 사실은 그 어느 경우에서도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사람 이상이 관여된 경우에는 ‘그대가 안다<子知>’라는 지적도 살아있다.

이제 이러한 경론을 직시하면서 그것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의의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에서의 욕심 근절은 어려운 일이요. 지행일치 삶 또한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이 속임 없는 순수한 경지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양진은 그 감시자로서 나 이외에 저 하늘과 귀신을 함께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속이지 않는 일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예기<禮記>, 악기<樂記> 편의 다음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릇 물질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궁하다.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함에 절제가 없어 면 물일이 이를 때 사람이 물질로 된다.

사람이 물질로 되면 천리를 없애고 인욕도 다 채우지 못하니 이에서 이기고 거역하고 속이는 마음이 있게 된다.

근본적으로는 물욕<物慾>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즉 물질지향의 욕구본능에 그 어떠한 절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인간성 기반으로서의 천리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욕구의 무한성으로 말미암아 물질이 그 암혹한 욕구 자체를 만족시킬 수도 없는 것이기에 바로 그 불만족의 상황에서 속암의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속이지 않음의 태도는 곧 욕구 절제의 조건에서 기대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