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다에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중국을 존중할 줄 알아 서쪽으로 사신을 보내 흠모하여 동화코자하고 북쪽으로 만리장성의 관문을 두드려 내부를 간절히 구하였도다. 그 정은이 공손함보다 지극하고 복종하고 따름보다 아낄만하다. 이에 특히 그대를 봉하여 일본왕에 삼고, 이 고명을 하사하시도다.
 아 그대 해외에서 의관을 입고, 바깥 변방으로서 우리 중국을 굳게 지키려 하나니, 신하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서약을 생각하고 황은의 두려움을 느껴 정성을 버리지 말지어다. 삼가 황제의 말씀에 복종하고 교화하시는 바를 준수할 지어다.
 만력 23년 정월 21일’

○ 포로들의 생활
 도요토미는 임진왜란 초에 조선의 민간인에게 해를 입히지 말 것을 지시했지만 실제로는 서화부, 공예부, 포로부, 금속부, 보물부, 축부 등의 여섯 개 특수부대를 조직해서 조선의 인적, 물적자원을 약탈하여 일본으로 수송하도록 하였다. 위로는 조선의 왕자 임해군, 순화군 아래로는 사기장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조선인을 납치한 이유는 도요토미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손실한 인적, 물적자원을 조선인의 납치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재란 때에는 조선인 납치의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이 때에 이르러서는 포르투갈 노예상들에게 팔아 넘길 목적으로 일본의 전문 노예상인들이 직접 조선에 들어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갔으니 임진왜란은 한편 노예전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유재란 때에 일본군은 일본 노예상에게 돈을 받고 조선인 포로를 넘겨주기도 했고 그들이 조선인을 강제로 납치하는 것을 묵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인을 포로로 잡아가는 광경에 대해 일본 종군 승려 케이넨의(조선일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죽인다. 그리고, 산사람은 새끼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 끌고 간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자식 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들도 산도 불지르는데 혈안이 된 무사들의 소리가 시끄럽고 마치 아수라장을 방불케하는 비참한 광경이다.’ 라고 조선인을 포로로 잡기 위해서 광분하는 일본군을 묘사하고 있다.
 또, ‘조선 아이들은 잡아 묶고, 그 부모들은 쳐죽여 갈라 놓으니,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다. 남은 부모자식의 공포와 탄식은 마치 지옥의 귀신이 공격해오는 때와 같이 공포와 서러움 속에서 몸을 떨고 있다. 애처롭다. 네 마리의 새가 어미와 이별하며 둥지를 날아갈 때의 심정이 이와 같은 것일까? 떨어지는 모자의 탄식을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 하였으니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포로들의 생활 또한 비참하였다. <부상록>의 기록에 의하면 ‘왜인들의 풍속이 사환하는 사람을 가장 요긴하게 여기므로 조선의 포로는 태반이 왜인의 노복이 되어 있다.’고 적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포로들이 일본인의 하인으로 전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에서는 이름난 집안의 인물이었던 사람도 그러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조선인 포로들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만사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다리 위에서 하천주를 만났다. 도쿠시마성 아래 길다란 강이 있고 강위에 흥교다리가 있는데 다리 위에서 매양 열사람을 만나면 여덟, 아홉명은 우리나라 사람이다. 하군은 진주의 이름난 족벌인데, 왜인의 외양간 시중과 꼴머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밤이면 다리위에 모여 혹 노래를 부르고 휘바람도 불며, 혹은 회포도 풀고 한숨 지으며 울부짖기도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진다.’

○ 서구인이 본 임진왜란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에 와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조선에 대한 정보를 서양 세계에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서구 선교사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술은 일본이나 조선 어느 한편에 기울어 편파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중도적 입장에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공정하게 기술하고 있어(샤를르브와 일본역사) 이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일본땅에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제3국인으로 유일하게 임진왜란을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주인공들이며 이러한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양국에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에도 많지만 그 내용들이 각기 자국에게 약간씩은 유리하게 기록된 점을 고려할 때 서구인이 본 임진왜란의 기술은 비교적 공정한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보겠다. 특히,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만함과 간교성을 잘 기술하고 있으며 조선 여인들의 강한 정조관념과 명예정신, 바다에서 거둔 조선 수군의 백전백승의 이야기들은 서구인의 눈에 비친 임진왜란의 또 다른 면모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는 스페인 사람으로 16세기말 일본땅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이며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국땅을 밟은 사람이다. 그는 경상도 일대의 해안지방에 머물면서 보고들은 당시의 상황을 글로 남겼다. 세스뻬데스 신부가 16세기 당시 한국땅을 밟은 최초의 서구인이라는 점과 함께 그가 임진왜란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서방 세계의 증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임진왜란에 관한 기술은 매우 큰 가치가 있다. 수많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세스뻬데스는 직접적으로 조선을 방문하고 그 견문을 편지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을 더해준다.
 세스뻬데스가 조선땅에 도착한 후 쓴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는 스페인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서간문들은 친필의 원본이 아니라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사본이다.

○ 세스뻬데스의 첫 번째 편지
 고니스의 정적인 가토는 여기에서 북쪽으로 약 15레구아쯤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군을 여러번 공격했으며 그 공격중 한번은 어느 지역에서 벌어졌는데 기록에 의하면 그곳에는 천개가 넘는 불교사원들이 있으며 막대한 양의 재물과 식량이 있다는 말을 그가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토가 그곳에 도착하여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불지르고 뒤엎어 버렸는데 소식에 따르면 일본군의 극렬한 행동을 제지하기 위하여 10만명의 중국 군대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부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조만간에 완성되리라 여겨지는 놀랄 만큼 거대한 방어 작업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니시의 부하들이며 맹우들인 모든 귀족들과 군사들이 야영하고 있는 발치에 높은 방어벽들과 망루들과 튼튼한 초소들을 세워 놓았습니다.
 모든 것들은 잘 지어졌고 또한 거대하였습니다.

○ 세스뻬데스의 두 번째 편지
 조선의 추위는 매우 혹독하여 일본과는 비교도 안됩니다.
 하루종일 손발이 반쯤은 마비되어 버리고 아침에는 미사를 올리기 위하여 거의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내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천주님께서 내려주시는 결실에도 감사드립니다. 나는 원기가 넘치며 나의 사명과 추위를 꺼리지 않습니다. 이곳의 카톨릭 신자들은 매우 불쌍하며 굶주림과 추위, 질병 등 다른 곳의 상태와는 다른 매우 어려운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식량을 보내주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불가능한 대단히 적은 양만이 도착됩니다. 게다가 일본 본토에서 오는 지원이 매우 불충분하고 또 매우 늦게 옵니다. 지금 배가 온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박을 잃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타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결말짓기 위하여 와야 할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병사들은 이토록 전쟁이 지연되는 것은 중국군의 배가 도착하고 군대가 상륙할 때인 여름까지 일본군을 기다리도록 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 1592년 예수선교회 연례 보고서 기사
 부록편에 나오는 임진왜란 기사에 이 독재 군주는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 후에는 어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외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 양자라고 하는 사실에 걱정했으나 어린 아이가 세 살이 채 안 되어서 죽자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덴까의 통치를 그의 조카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중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기 위하여 그의 군대를 중국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원정에서 죽든지 하여 후손들에게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뜻을 품었다.
 도요토미는 여러 번 자신의 신하들과 친밀한 대화에서 말하기를, 이에 일본 내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명예가 없으며 이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는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세력에서 자신이 밀려날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중국 정복을 꾀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자 하였다. 도요토미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앞으로 자신의 왕국내에서 발생할 폭동이나 전쟁을 방지할 수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서, 중국 원정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 때를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하였다. 일본의 영주들은 이 원정이 그들에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영토밖에서는 외국사람들과 결코 전쟁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살아서는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가득 찼다. 도요토미는 신하들에게 자유로움과 관용을 베풀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든 책략을 다 동원하였다.
 고니시는 2만명의 전투원과 함께 총 6백43척의 크고 작은 배에 편승하여 쓰시마섬을 출발하였다. 특히, 부산성이라고 불리는 요새는 일본인들이 들이닥칠 첫 관문인 관계로 그곳에는 6백여명의 병사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마을에서 모은 평민들이 있었다. 연도에는 모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지 앞에 끝이 뾰족한 쇠들을 뿌려 놓았으며, 요새 내부에는 구리로 만든 작은 포들이 2천개나 배치되어, 그 중 어떤 것들은 작은 포환을 발사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크기가 두 뼘 정도 되는 화살촉들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꼬라이(조선) 병사들은 모두가 견고한 가죽으로 만든 가슴받이를 몸에 두르고 무장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화살을 막아 내기 위해 철모를 쓰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궁수들이 많고 또한 미늘창을 쓰는 병사도 있었다. 마침내 고니시는 음력 4월 12일에 요새 밖의 모든 마을들을 일차적으로 불지를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나서 요새의 대장 앞으로 항복할 것을 권하고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내용의 서찰을 보냈다. 이 서한을 받은 대장은 이를 비웃으며 국왕에게 보고하여 허락을 한다면 항복하겠노라고 회답하였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