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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格物>과 성찰<省察>
2021년 05월 21일 (금) 11:14:52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시대 선비들은 격물치지를 기본적인 공부법으로 삼았다.

 
격물치지는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삼라만상의 사물들을 관찰하고 그 이치를 강구하는 것을 이른다.
 
물론 이치를 강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개인의 심성을 수양하거나 바람직한 사회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에까지 확충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성리학에서의 공부는 지식을 추구하는 궁리<窮理>의 지공부<知工夫>와 지식을 실천하는 거경<居敬>의 행공부<行工夫>를 포괄한다.
 
남명<南冥> 선생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의 ‘물을 보고 산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라는 명언이 바로 이러한 공부법을 일갈한 것이다.
 
특히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처음 위로 올라갈 때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가 더욱 어려웠다.
 
내리막에는 그저 다리만 들면 몸이 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어찌 선을 좇는 것이 오르막길 같고 악을 좇는 것이 내리막길 같지 않겠는가.
 
“군자는 순리대로 살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을 무릅쓰면서 요행을 바라느니라. 밤에 누워 조용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름난 산에 들어온 자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씻지 않겠으며 스스로 소인이라 기꺼이 말하겠는가. 반드시 군자는 군자이고 소인은 소인이 되는 것은 하루 동안 햇볕을 쬐는 것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 발언은 생활에서 격물의 공부를 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조선의 선비들은 산과 물을 찾아 먼 길을 나서서도 체험의 공부를 하였거니와 평범한 일상에서도 격물의 공부를 잊지 않았다.
 
각박한 세태와 부화한 인심으로 인하여 인성이 날로 거칠어가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격물의 공부를 거듭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 지식인의 일상이었던 격물의 공부가 현대인에게는 무척 낯설다.
 
이 때문에 격물의 공부를 기록한 옛글이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격물의 공부거리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의 글 중에는 격물공부를 담은 것이 무척 많고 또 그 주제도 매우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물고기나 벌레와 같은 가장 하찮은 미물<微物>을 보고 어떻게 인식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지공부와 행공부를 연결한 격물의 공부를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하면서 물고기나 벌레 등의 미물을 무시한다.
 
하지만 때로는 미물이야 말로 인간보다 도덕성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도 하므로 인간이 이를 배울 수도 있다.
 
또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미물조차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태도를 살핌으로써 이른바 소회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17세기에 김수항<金壽恒>이 문과급제하여 한강하류 통진<通津> 고을에서 군수의 직책으로 벼슬을 하고 있을 때다.
 
관아의 서재 앞에 작은 못이 있었다.
 
못에는 물고기는 살지 못하고 개구리만 떼를 지어 살았다.
 
더운 여름 장마철이 되자 우는 소리가 매우 커졌다.
 
다행인지 크게 가물어 못 물이 완전히 말라버렸기에 개구리들이 한참동안 울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큰 비가 내려 물이 불자 다시 개구리 소리가 생겨났다.
 
그 소리가 요란하여 화를 내는 듯 미친 듯 아침부터 밤까지 울어대며 조금도 그침이 없었다.
 
밤이면 더욱 심하여 김수항은 “이 놈들이 울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리게 하고 무슨 말을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게 하여 사람을 만나도 말이 통하지 않고 밤에 누워도 잠을 이룰 수 없게 한다”라고 투덜대었다.
 
화가 난 그는 아예 개구리 씨를 말라버리겠노라 다짐하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달리 하였다.
 
내가 개구리를 내좇을 방도를 도모하다가 문득 개구리 소리가 귀를 요란하게 하는 것이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바지만 개구리에는 그 천성을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떠올렸다.
 
인정으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성인도 금하지 않았으니 사람이라 그러한 것이니 동물은 더 심하다 하겠다.
 
개구리가 우는 까닭이 그 또한 천성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죽여서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는가.
대개 사람과 동물이 태어나면 비록 기풍의 차이는 있지만 제 각기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이치는 한 가지다.
 
사람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얻어 그 천성으로 삼고 동물 또한 동물이 되는 이치를 얻어 그 천성으로 삼는다.
 
사람으로서 사람의 천성을 타고 동물로서 동물의 천성을 따르는 것을 일러 천성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르는 바에 혹 같지 아니함이 있을지라도 따르게 하는 것은 같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지각은 동물에 비해 가장 뛰어나지만 지각이 뛰어난 존재가 오히려 물욕에 의해 가려질 때가 많아 그 천성을 극진히 하는 일이 드물다.
 
치우치고 막힌 동물이야 말로 오히려 천성을 극진히 할 수 있는 까닭을 무엇인가.
 
천기<天機>가 절로 움직여 수식을 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울음을 우는 것은 가르치고 배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자연스러운 천성에서의 그러할 뿐이다.
 
지금 사람이 가르침과 배움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과연 천성을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가르쳐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사람이 오히려 짐승인 개구리만도 못하다.
 
그런 사람이 동물의 천성을 금제하는 것이 옳을 리가 없다.
 
이를 다시 자신의 학업으로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나는 천성이 어둡고 게으르며 잠에 기갈이 들었다는 놀림을 받고 있다.
 
일찍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아 학업이 날로 피폐해 지고 심지가 나날이 투박해 지고 있다.
 
아침에 지난 잘못된 행실을 후회하고도 저녁에 반복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자더라도 금방 깼다.
 
이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고인<古人>의 경침<警枕>으로 삼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침은 둥글게 만들어 깊은 잠에 빠지지 않게 만든 베가 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잠을 줄여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경침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만약 오늘 이와 같고 내일 이와 같으며 다시 그 다음날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습관이 되어 천성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어 혼미한 마음을 바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구리가 나에게 실로 경발<警發>하게 하는 도움을 준 것이다.
 
하물며 천성을 따르는 도리는 내가 체험하면서도 터득하지 못한 것이지 않은가. 이제 개구리를 보고 자신을 반성한다면 이 개구리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동물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데 이를 제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은 명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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