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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12景 과 14마을의 유래 및 옛 이름
2021년 02월 19일 (금) 11:37:06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구만12景은 구만의 풍경을 12동네의 이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노래한 것으로, 구만의 자연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梅林牧笛(매림목적) - 소먹이는 목동이 매화나무 언덕에서 피리를 불고,
龍塘疎雨(용당소우) - 용당 마을에 내리는 비는 성글게 보슬보슬 내린다.
臥龍歸雲(와룡귀운) - 와룡동의 구름은 산자락을 휘감고 돌고,
蓮捕夜月(연포야월) - 연동마을에서 보는 밤에 내리는 달빛정취는 그림 같구나. 
筆頭落照(필두낙조) - 필두봉에서 물든 서산 낙조는 은은하고,
花山早春(화산조춘) - 화촌마을 뒷산의 꽃은 이른 봄에 만개하였구나. 
積石宿霧(적석숙무) - 적석산의 저녁 운무는 자는 듯 자욱하고,
蘇臺明月(소대명월) - 깃대봉 아래 소대마을의 보름달은 님처럼 밝게 비치고. 
洛浦脩竹(낙포수죽) - 낙동 의성등의 대나무 숲의 소리는 옛 임진왜란의 정신이 들려오는 듯하구나. 
昆季朝煙(곤계조연) - 곤계산 아침의 연무는 마냥 평화롭고,
廣巖平林(광암평림) - 광덕을 이루는 넓은 숲이 구만의 초입을 이루는구나.
菊川漁歌(국천어가)- 국천에서 한가로이 고기를 잡으면서 노래 한 소절을 읊으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노라.
                   
 
구만면 14동네 마을 이야기
 
효락리(孝洛里) - 효대와 낙동마을
낙동마을 - 소태산(깃대봉)의 골짜기도 깊고 물도 맑고 풍경이 좋아서, 곡락방 또는 낙동(樂洞)에서 유래됨.
면소재지로 구만의 행정이 집중된 곳. 면소, 학교, 농협, 파출소, 우체국, 교회, 식당, 다방 등이 있음.
유적지:소천정, 이회서당, 허재기선생(독립지사) 공적비, 의성등(義城登, 깃대봉 기슭아래 임란 때 의병장 최균,최강 장군이 마을 산정에서 의병들을 훈련시키고 은거하였던 곳)
효대마을 - 옛날부터 효자와 효부가 많이 나와 마을명을 효대로 개칭. 현풍 곽씨가 주로 거주함.
유적지:냉천서당-곽정현 선생이 한학을 강학하여 많은 문생들을 배출하였음. 유학자 의재 이종흥 선생께서도 냉천서당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냄.
 
주평리(酒坪里) - 주천과 암담, 번듯마을
주천의 옛 이름은 '머들'. 크고 작은 바위가 많다(너드랑).
조선조 말 학자인 박완천당과 노묵재 선생께서, 바위아래 찬샘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절을 노래한 곳에서 유래하였음. 
 
화림리(華林里) - 화촌, 신계, 선동, 당산마을
화촌마을 - 마을 뒷산에 함박꽃이 많이 피어 꽃동네에서 유래.
고령토(백토) 광산이 있었고, 구만사발이 현재 도산서원 근처에서 생산되었음.     
유적지:도산서원(의민공 최균, 의숙공 최강 장군을 제향하고 있는 곳)
신계마을 - 옛 이름은 새내이다. 주평마을에서 흐르던 시내가 큰 홍수로 인하여 신계마을 앞을 둘러서 흐르면 서 '새로 시내가 난곳' 이란 뜻.
신암 허격선생의 고향이고 이회서실이 있었음. 구만사발의 옹기 터가 있는 점이란 곳에는 현재 두 가구가 살고 있음.
당산마을 - 마을 중간에 독뫼(야중임야)를 당산이라 하였음.
마을의 윗동네를 까치골(鵲, 까치작) 작동이라고 하였음.
옛날에 까치가 많았고, 집에 대문이 없는 것이 특이함. 지금도 까치골(작동)마을에는 대문이 없음.
통샘이(井) 마을내에 있는 샘으로 물맛이 일미고, 무병장수 양수로 알려짐.
독립지사 최낙종 선생의 생가가 있고, 그 옆에 옛 면사무소가 있었음.
선동마을 - 구만면에서 가장 오지인 곳으로 자연인 처럼 삶을 힐링할 수 있는 산골이다.
 
저련리(苧蓮里) - 연동과 저동마을
연동마을 - 연근이 많이 생산된 곳이므로 연동이라 함.
구만면과 개천면을 경계하는 담티재가 있는 곳.
저동마을 - 옛 이름은 모시골이다. 모시를 많이 생산한 곳. 저동의 苧(모시저)임.
 
용와리(龍臥里) - 용당과 와룡마을
와룡마을 - 뒷산(용두산)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
고성군 독립만세 발원지가 국천사장(와룡교 옆)에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400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 있다.
용당마을 - 매화산(마을옆)밑에 흐르는 시내에 용소가 있어 용이 목욕을 하고 누워 있는 모습에서 유래.
 
광덕리(廣德里) - 광암, 중암, 덕암마을
광암마을 - 마을 뒤편 사당산 산록에 삼사봉이 있었음.
그 중 큰 바위에 금빛이 있었다 하여 광암.
광덕리 지석묘 - 기반식 지석묘 9기가 있으나 많이 훼손되었음.
탁거리(마을입구)에는 의민공,의숙공(최균,최강) 형제의 신도비가 있고, 공원화 되어 있음.
만대첨앙(萬代瞻仰) - 만대토록 영원히 우러러 보는 뜻의 비석이 있다. 
중암마을 - 옛 이름 '흑달이', 보부상들이 이곳을 지날 때 마다 구름이 달을 가려 어두워서, 흑월(黑月)에서 비롯됨.
덕암마을 - 마을 뒷산의 큰 암석명을 따서 덕암이라 개칭.
마을 입구에 덕암 숲이 잘 조성되어 있고, 김해 김 씨 문중의 쌍효각-효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제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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