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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의 의의
2020년 12월 24일 (목) 11:23:29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종가<宗家>는 특정 가문의 혈통의 원뿌리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오래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집이라는 문화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종가에 깃든 정통의 보편성은 가통<家統>에 출발점을 두며 가통은 종가를 창출한 현조<顯祖>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즉 가문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존중받는 현조의 삶과 정신이 후손들에게 계승되면서 독창성을 지닌 응축된 문화이다.
 
여기에는 학문적, 사회적 성취물인 다양한 기록문화, 올곧은 정신을 강조하는 가훈, 종가일기, 편지 등이 규범문화, 유교이념이 투영된 고택, 사당, 서원, 정자, 재실 등의 건축문화, 검약과 절제의 선비정신을 담고 있는 의례, 음식 등의 생활문화 등이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선조에 대한 자긍심을 토대로 형성, 전승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종가 문화는 쉽게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런 배경에서 종가를 전통문화의 마지막 보루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전국 시군에서 제작한 관광지도를 들여다보면 종택 아이콘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지역문화단체에서 운영하는 정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의 답사코스에도 어김없이 지역종가들의 포함되곤 한다.
 
이는 곧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종가가 개별 가문의 소유를 넘어 지역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종택의 솟을대문은 늘 활짝 열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종가의 솟을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은 비단 후손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왜일까.
 
그야말로 종가는 정통문화의 마지막 보루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택과 여기저기 걸려있는 멋들어진 현판 너머에서 봉제자접빈객을 묵묵히 실천해 온 종손과 종부의 삶을 못내 궁금해 하여 종가의 솟을대문을 두드린다.
 
그리하여 수 백년동안 전해 내려온 종가의 솟을대문을 두드린다.
 
수 백년동안 전해 내려온 종가의 의례문화와 음식문화 등을 체험하면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인해 연간 약 50만명의 농촌인구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이주했으며 그 결과 농촌인구의 약 절반 가량이 고향을 등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마을공동체가 공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눈부신 경제상장을 이루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뼈아픈 상황도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촌인구 고령화에 따른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 탓에 환갑을 훌쩍 넘긴 백발의 이장이 이집 저집 숨가쁘게 뛰어다니는 광경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는가 하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마을자치기구가 제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인문적 가치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깨닫고 그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와 삶의 진정성을 밝혀 나가는 것을 말한다. 종가에는 이러한 인문적 가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종가의 정신문화 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가를 창시한 인물은 가문을 넘어 지역사회로부터 존숭될 만한 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가문의 창달보다는 덕의 함양을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가훈서를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후손들은 대를 거듭하여 조상의 유지를 실천함으로써 가통을 수립해 왔다.
 
덕의 함양은 종손과 종부는 주된 책무인 봉제사접빈객은 물론이고 주변을 보듬고 살피는 이른바 베품의 자세를 갖추는 법도를 교육 받는다. 주목되는 점은 베품의 대상이 혈통의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전남 구례의 운조루<雲鳥樓>에서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나무로 원형 뒤주를 만든 뒤 거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어주었다.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쌀 두가마 반이 들어가는 이두주가 비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경주 최부자 집의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는 육훈<六訓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운조루와 최부자 집이 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 범민족적으로 존경받는 명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눔, 보듬의 베품을 정신을 함양하고 철저히 실천해 온 덕분이다.
 
이는 곧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으로 오늘 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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