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장계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왜적들이 피를 서로 갈라 마셔가며 맹세를 지은 문서가 있는걸 보면 그들이 진작부터 우리를 침략할 생각으로 전쟁을 준비해 왔습니다.’ ‘왜적의 깃발은 물들인 것이 각각 달라서 전일 옥포의 적들은 붉은 깃발이요. 이번 사천의 적들은 흰 깃발이요. 당포의 깃발은 누런 깃발이요. 당항포의 깃발은 검은 깃발이요. 이것은 각각 부대를 분간하기 위한 표시일 겁니다.’
 충무공은 전쟁에서 큰 승첩을 거둔 것만이 아니라 왜적들의 특색까지 주의 깊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역량이 대단했다. 충무공은 이날 비가 오고 구름이 덮여 물길이 잘 보이지도 않고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당항포 앞바다(동해면 군진마을 앞바다)에서 군사들을 휴식시킨 다음 안전하게 밤을 지내기 위해 맛을 우장(동해면 막개부락) 앞바다로 갔다.

 ○ 6차 출전(제2차 당항포해전)
 이순신은 병력 증강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정보활동을 철저히 하였다. 이순신은 어느 때라도 왜선을 멀리서부터 살펴서 즉각 보고하라고 했다. 통제사로서 계속 머물러 있는 동안 각처의 망대에는 장령을 파견하여 적정을 정찰하도록 하고 수로의 요충지에는 복병장을 배치하였다. 이러는 동안 한해 겨울을 지난 1594년 2월부터는 지난날 이순신의 위력에 눌러 바다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왜선들이 차차 움직이기 시작하여 진해, 고성 등지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민가를 불사르고 살인을 하는 등 온갖 행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왜선의 동향을 알게 된 경상감사 한효순의 보고에 의하여 조정에서는 2월 1일 3도의 수군을 지휘하여 적을 무찌르라는 유서를 내렸다.
 이처럼 왜선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는가 하면 다시 2월 8일에는 도원수 권율로부터 명나라의 심유경이 벌써 왜적들에게 화친을 청하였다는 글을 받는 등 이런 때에 공격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화친으로 말미암아 공격을 중단해야 할 것인지를 통제사 이순신으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침착하게 이미 배치된 망장(望將:척후장)과 복병장을 통하여 들어오는 보고를 신중히 검토하였다.
 그리고, 왜선들이 춘원포와 소소포 등지에 출현한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에 이순신은 원균과 이억기 등에게 출전을 지시하는 한편 순변사 이빈에게도 전의 약속대로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육지로 올라간 왜병들을 모조리 무찔러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다시 말해서 수륙으로 협공한다는 것이였다.
 침착하게 출전준비를 하고 있던 이순신은 3월 3일에 척후장에게 적선 30여척이 당항포와 오리량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때 이순신은 3도의 모든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에 집결하게 하여 어둠을 타서 몰래 출전을 단행하였다. 왜군들에게 함대 이동을 은밀하게 함으로서 그들이 도망하기전에 전멸시키는 것이였다.
 모든 전선을 거느린 이순신은 견내량을 통과하여 이날 밤 10시경 지도에 이르러 일단 휴식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강구하고 3월 4일 밤에 다시 출항하였다. 이때 왜선 10척이 진해 선창에서 기슭을 따라 출항을 하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어영담이 거느린 경쾌선을 일시에 좌우에서 협공을 가하여 6척은 읍전포에서, 2척은 어선포에서, 나머지 5척은 자구미포에서 각각 빈 배만을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다. 왜병들은 배를 버리고 산으로 도주했기 때문에 사살하지 못했다. 이때 당항포에 머무르고 있던 왜선 21척은 그들의 모든 전선들이 불타고 있는 연기를 바라보고는 모두 상륙하여 육전으로 대항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에 이순신은 왜선들이 도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당항포 포구를 가로막고 밤을 지냈다.
 다음 5일에는 어영담이 거느린 경쾌선이 포구안으로 돌진하였으나 왜병들은 밤을 이용하여 모두 도망치고 빈 배만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매어둔 빈 배 21척만을 불태워버렸다. 이리하여 이 당항포 해전은 포성을 울리지 않은 채 끝난 것이었으나 이순신은 모든 전선을 집결하게 하여 포성을 울리면서 동서로 진형을 바꾸며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영등포, 장문포, 제포, 웅천, 안골포, 가덕, 천성 등지의 왜병들은 겁을 내어 복병하고 있던 막사를 그들 손으로 불태우고 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와 같은 전공을 모두 경상도 수군만의 것으로 보고를 올렸기 때문에 진중의 여러 장령들의 불평이 많았다. 이를 알게 된 이순신은 다시금 상세하게 각 도별로 전공이 있는 장령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불태워버린 왜적선 수를 장계하여 그러한 불평을 무마하였으며 왜적선 가운데서 꺼내온 의복과 양식 등은 군사들에게 상으로 각각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제2차 당항포해전이다.

 ○ 진주성 제 2차 전투
 일본군은 조.명 연합군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한성에서 철수한 뒤, 그들이 경상도 해안지역에 축조한 왜성에 주둔하였다.
 경상도 지역으로 집결한 일본군은 이 무렵 경상도의 요지이며, 전라도로 진입하는 육상의 관문이기도 한 진주성을 공략하여 지난해 10월의 제1차 전투에 있어서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은 진주성 패전을 그들의 침략계획에 큰 차질을 초래한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보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한성 철수가 완료될 무렵인 5월 20일에 도요토미는 다시 진주성 공격을 명령하였다. 이에 일본군 공격부대들은 창원, 김해 부근에 집결하여 진주성 공격 준비를 갖추었다.
 이러한 일본군의 진주성 공격 계획이 알려지자 진주목사 서예원 등은 급거 진주성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지역의 의병들도 속속 모여 들었다. 이렇게하여 진주성에는 3천5백여명의 군사와 6만여명의 성민들이 입성하여 창의사 김천일과 경상우병사 최경회, 그리고 충청병사 황진을 중심으로 진주성을 사수키로 결의하였다.
 일본군은 22일 오전 가토오군은 성의 북쪽을, 고니시군은 서쪽을, 그리고 우키다군은 동쪽을 각각 담당하여 예비대를 제외한 7만여명으로 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본군의 기세에 꺾여 거창, 남원 등지에 주둔하고 있던 명군은 진주성의 위기를 구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남원에 주둔중이던 명군은 진주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망만 하고 있었다. 진주성의 군민들은 성이 완전히 포위당하여 외부의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을 지키려는 결의를 더욱 공고히 하여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시켰다.
 일본군은 25일부터 28일까지 서문 쪽으로 공격을 집중하였는데, 이때 진주 지휘하던 충청병사 황진이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에 진주성 군민들의 사기가 저하되었다. 29일에는 일본군이 귀갑차를 앞세우고 다시 공격하여 비에 젖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물밀듯이 성안으로 돌입하였다. 이에 진주성의 군민들은 남강을 뒤로한 채 촉석루 쪽으로 밀려 최후의 결전을 벌였으나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진주성 방어전을 총지휘하던 김천일은 그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으며, 3천여명의 군사와 6만여명의 성민들은 진주성 함락과 함께 전멸되고 말았다. 일본군은 그 후 다시 각군별로 지정된 왜성(倭城 )으로 되돌아가 분산 주둔하였다.

 ○ 정유재란
 임진왜란을 종결시키기 위한 명과 일본 양국간의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일본군은 1597년 1월부터 조선에 재침을 감행함으로써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이 때 편성된 일본의 조선 침공군은 육군 11만5천여명, 수군 7천2백여명이외에 조선에 잔류하고 있던 2만여명을 포함하여 14만여명에 달하였다. 1597년 1월 14일 가토가 지휘하는 제 1군이 부산 다대포에 상륙한 후 그 뒤를 이어서 고니시의 제 2군이 웅천으로 상륙하여 북진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렇게 상륙하여 거점을 확보하여 근 반년이 지난 7월 8일에 이르러 일본군의 후속부대가 경상도 남해안 지역 일대로 상륙하였다.
 명.일 강화교섭의 진행에 따라 명군은 1593년 8월부터 전병력을 요동지방으로 철수시켰다. 그러나 명은 조선의 출병요청에 따라 재출병을 결정하고 1597년 3월에 형개(邢价)를 경략으로 삼아 총병력 6만명 규모의 동정군(東征軍)을 편성하였다.
 1593년 8월 3일 일본군의 총대장 고바야카와는 공격군을 좌.우 두 개군으로 편성하여 전라도 전주로의 진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당시 조선군 측 방어 병력으로서는 도원수 권율이 성주-김천간에서 일본군의 북상에 대비하고 있었으며 경상우병사 김응서가 의령에서 일본군의 길목을 막기 위해 배치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일본군은 정유재란 발발 초기단계에도 무인지경처럼 텅빈 상태의 영남지역을 휩쓸면서 그들 공격의 주목표인 전라도로 진격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16일부터 남원성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였다. 이에 남원성을 지키던 전라병사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 등은 최후의 순간이 되자 모두 불타는 화약고로 뛰어 들어 동시에 순국하였다.
 남원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8월 19일에 전주로 진격하여 조선수성군이 모두 도망간 전주성을 접수하였다. 일본군은 8월 29일에 전주를 출발하여 충청도로 진격하였다. 일본군은 9월 중순까지 충청도의 중요 지역을 장악하였다.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한 명군은 부총병 해생의 지휘 아래 강행군을 거듭하여 9월 7일 새벽에 직산(稷山) 남쪽 1킬로미터 야산에 진영을 구축하였다. 이무렵 일본군의 선발부대가 앞서 북상하다가 명군을 발견하고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이에 명군이 포격으로 대항하여 양군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일본군이 무너졌다.
 일본군은 이 직산전투에서 패전하자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 경기도 진출을 포기하고 추풍령과 조령을 거쳐 경상도로 남하하거나 금강을 거쳐 전라도로 남하하였다. 이로써 일본군은 9월 중순 이후로 접어들면서 전쟁이 종식되기까지 울산성, 사천성, 왜교성 등지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순신을 하옥시키는 데에 성공한 일본군은 1597년 7월 초순에 6백여척의 선단을 부산에 입항시켰다. 이에 원균은 7월 14일 새벽에 총 1백여척을 이끌고 부산포로 항진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칠천량에서 이를 봉쇄하고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조선 수군은 완전히 궤멸되고 말았다. 이 해전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일본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자 그들이 정유재란을 개시하면서 구상했던 수륙병진작전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원균의 조선 수군이 와해되자 조정에서는 7월 22일에 이순신을 통제사에 복직시켜 위기를 수습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은 남은 12척의 전함을 확보하고 수백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 선단과 맞서 싸울 결의를 다졌다.
 9월 16일 마침 일본 수군 1백3십여척이 명랑수로 동쪽입구로 진입하자 이순신의 선단 12척은 그 반대쪽 서쪽 출구를 봉쇄하고, 일본군 함대에 맹공을 가하였다. 조선 수군이 일본전함 31척을 격침시키자 일본군은 마침내 수로의 통과를 포기하고 선수를 돌려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제해권을 회복하고 8천명의 병력을 확보하여 일본 수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할 힘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일본군은 그 사기가 크게 위축되어 그들의 육군과 더불어 수륙양면작전을 전개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598년 8월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인 채 8월 28일과 9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철군명령을 내렸다. 이때 왜교성에 머물면서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진 고니시는 구원을 요청하였다.
 일본군의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우선적으로 그들의 구원 부대를 격멸하기 위해 노량 앞바다에서 일본군 구원 부대가 지나갈 길목을 차단하고 공격하였다. 이 전투를 진두지휘하던 이순신은 전투가 한창 치열하게 전개되던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군의 유탄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조선 수군은 “전투가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 사실을 진중에 알리지 않고 끝까지 전투를 계속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