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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道東書院>
2020년 11월 20일 (금) 14:41:52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도동서원은 경북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서원으로 1605년(선조3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한훤당은 동방오현<東方五賢>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의 한분으로서 한국 유학의 사림파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도서원은 1607년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국가의 공인을 받았으며, 1678년(숙동4)에 한강 정구<寒岡 鄭逑>를 추가 배향하였다.
 
이 서원은 대원군 서원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964년 서원을 전면 보수하였는데,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祠堂>, 중정당<中正堂>, 거의재<居義齋>, 수월루<水月樓>, 환주문<喚主門>, 내삼문<內三門>, 장판각<藏板閣>,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강당 사당 부장원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에는 한훤당을 주벽으로 하여 정한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도동서원이 창건될 당시에는 비슬신의 계류가 합쳐진 곳에 자리하여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는 사액을(1568) 받았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타버렸으므로 1605년 중건한 것이다.
 
선생의 선대는 본시 황해도 서흥부<瑞興府>인데 뒤에 현풍현으로 이거하였다.
 
9대조 보<寶>는 고려조에 관직을 지냈고, 7대조 천록<天祿>에 이르러 시흥군이란 벼슬에 봉해졌다.
 
증조<曾祖> 때 와서 조선개국과 동시에 과거에 올라 사헌부 시간에서 이름을 떨쳤다.
 
아버지는 무과에 올라 어모장군 사용으로 군부에 종사하였다.
 
무과 급제 무렵 당시 중추원 부사로 있던 한승순<韓承舜>의 딸과 혼인하였고 선생은 1454년 5월 25일 출생하여 1472년 순천박 씨와 혼인하였다.
 
처갓집은 한천야로 말곡 남교동인데 이곳에서 거처할 때  서실을 한훤당이라 하여 선생의 자호가 되었다.
 
뒤에 돌아와 현풍현 솔례촌 대니산 아래에 살았으며, 1480년 생원시에 급제하였는데 일찍이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제자로 인정받았다.
 
이 때 점필재 선생이 소학을 가르치면서 ‘진실로 학문에 뜻을 두려면 마땅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되니 광풍제월<光風霽月>도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후부터 선생은 소학으로써 몸을 다스리고 성인의 자질을 스스로 닦아가려고 하였다.
 
선생의 가학예절과 학업정진에는 어머니의 엄격한 성품과 곧은 예법에 있었다.
 
선생이 새벽마다 문안하여 마루 아래에서 절을 올렸는데, 혹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치 못하면 얼굴빛을 엄정히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마다 선생은 두려워하여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서 감히 물러가지 못하고 더욱 공경하며 효성을 다해 기뻐하는 기색이 보이면 물러갔다.
 
선생은 항상 초립을 쓰고 연밥으로 엮은 갓끈을 달고 다녔으며, 한 밤중에도 책을 마주 대하며 독서에 전념하였다.
 
학문이 어느 정도 도달하자 후학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을 임무로 여기면서부터 원근에서 배우러 오는 자가 줄을 이었다.
 
특히 일두 정여창과 친밀하였다.
 
선생은 1494년에 유일로 추천되어 남부참봉에 제수되고 이어서 군자감 주부,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연산 4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점필재의 문인이라 하여 희천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이무렵 선생의 어머니가 왕에게 글을 올려 잠시 집에 다녀갔고, 가까운 순천으로 귀양지를 옮겼다. 
 
어머니 한 씨의 모정이 선생에게는 특별하여 왕에게 두 번이나 글을 올려 뜻을 이룬 사례는 조선조 역사상 거의 드문 일이라고 생각된다.
 
1504년 10월 51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았다.
 
이로써 가산이 몰수당하고 아들 둘이 귀양 갔으나 중종반정 때 모두 방면되었다.
 
선생의 문인으로 조광조, 김안국, 김정국, 이연경, 정붕 등 다수가 있으며, 그 아래 이이, 성수심, 김인후, 서경덕 등 한국유학의 도통을 확립한 대표적인 인물들이 한훤당 선생으로부터 나왔으니 가히 한국 유학의 정맥을 이룬 것이다.
 
선생은 1507년 도승지로 증직되고, 1517년 우의정으로 증직, 1575년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시호를 문경<文敬>이라 하고, 1610년 문묘에 종사<從祀>하니 오현 가운데 선생이 수위이다.
 
매년 2월 중정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소장전적은 하사서적인 춘추 10권, 오경백편 5권, 경현록 등 95종 529책이 있다.
 
그 밖에 하사 제기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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