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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2020년 07월 03일 (금) 11:34:1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공자<孔子>는 신의가 없는 사람을 소와 말에 멍에를 연결하는 고리가 없는 것에 비유했다.

연결고리가 없다면 소와 말이 수레를 끌고 갈 수 없듯이 신의가 없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탄식한 것이다.
공자가 신의를 중시한 언설은 논어의 곳곳에 나온다.
 
특히 자로<子路>와 안연<顔淵>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노인은 편안하게 해 드리고 벗에게 신의가 있으며 젊은이를 품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보면 공자가 신의를 인생철학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명학파의 학자 가운데 신의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남명조식의 문인으로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1546~1632)이다.
성여신은 47세 되는 해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당했고 전쟁이 종결되자 고향인 진주동면 대여촌(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 남성마을)에 반구정<伴鷗亭>을 짓고서 학문에 힘을 쏟았다.
무너진 고을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향약의 실시를 주도했으며 지역의 학풍을 흥기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양몽재<養蒙齋>의 과거 준비를 하는 이들을 교육하는 지학재<志學齋>를 건립했다.
 
성여신은 남명학파의 학자로서 학문과 수양에 힘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교육, 풍속, 문화 등 다방면에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이러한 그의 삶에 있어 중요한 바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의이다.
이는 문집에 실려 있는 계서록<鷄黍錄>을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계서록은 성여진이 지수 이종영과 함께 계서회<鷄黍會>를 결성하여 매년 봄, 가을에 두차례씩 모임을 가진 일에 대한 기록이다.
 
계서회의 결성 1601년 11월 경상도 선비들이 고령에 모여 기축목사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수호당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상소를 올렸다.
이미 최영경은 1591년 신원이 되었고 1594년 대사현에 추증되었으며 선조가 특별히 제문을 내려 위로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축옥사에 깊이 간련한 우계<牛契> 성혼<成渾>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가하기 위해 이 상소를 올렸다.
12월에 김응성, 이익수, 이형, 이상훈 등이 대궐에 나아가 호소했으며, 이듬해 봄 2월에는 성주에 모여 다시 상소했다.
 
‘윤 2월에 성여신을 비롯해 이종영, 이대약, 정온, 강극신, 이육, 이수은, 도응유 등이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자 이제 조정의 공론이 조금씩 시행되고 시비가 바로 잡히고 있으니 그대들은 자세히 알고 있으라’라는 비답을 받았다.
21일 함께 귀환하는 길에 금릉멱에서 강극신과 도응유는 약목으로 향하고 정온은 지려로 갔다.
 
이후 고령과 거창의 경계에서 성여신은 용담을 경유하는 길로 가고 이종영과 이대약은 팔계로 들어갔는데 이때 헤어지면서 3월 보름에 수회접사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수회정사는 이종명이 건립한 정사로 의령군 만지산 무이계 가에 있었다.
그들은 약속한대로 3월 15일 의령 수회정사에서 만나 한양에 상소를 올리러 갔을 때의 고충 등을 이야기하며 이틀을 머물렀다.t
그리고 계서의 모임을 약속하며 매년 3월과 9월의 보름으로 날을 정했다.
 
또한 오로지 하나의 신사를 지켜 달리 부르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계서회가 결성되었는데 계서는 한나라 때 범식과 장소의 우정에서 유래한 말이다.
 
두 사람은 태학에서 함께 공부하며 우정이 매우 두터웠다.
이별할 때 범식이 2년 뒤에 장소의 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9월 15일에 장소가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범식을 기다렸다.
그의 부모가 “산양은 여기서 천리나 떨어진 곳인데 그가 어찌 꼭 올 수 있겠느냐”라고 하자 장소는 “범식은 신의가 있는 선비이니 약속한 기한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범식이 과연 그날 찾아왔다고 한다.
 
계서회를 개최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살림에 여유가 있으면 억지로 인색하고 검소하게 차릴 필요가 없으며 여유가 없다면 굳이 풍요하고 윤택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간혹 사정이 있어 이르지 못한 이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 그러려니 생각하며 반드시 같이 하자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마음속에 진실한 뜻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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